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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10. 2024

닮다

어설픈 전원생활

이웃집에서 일 년간 먹을 호랑이콩을 샀어요.

가을바람의 품 안에서

남편과 마주 앉아 콩을 깠습니다.

대야에 그득한 콩이

하나둘 줄어들며

우리의 이야기도 익어갑니다.

일주일에 두 번만 밥에 두어 먹으면 반년은 먹을 수 있을까요?

몇 알갱이는 잘 두었다가 씨앗으로 쓰려합니다.

또다시 봄이 오고

호랑이 무늬 콩은 싹을 틔울 겁니다.

유전자가 뭔지

껍질에도 호랑이 무늬가 아롱져 있어요.

콩을 심은 곳에 콩이 나듯

한 구석에 내 모습과 습관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딸들을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점점 더,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살아있는 것들에

경외감이 듭니다.

모든 것들은 정말 신비하고 아름다워요.


들판에 나가 봄을 거치고 뜨거운 여름을 견딘 만물을 봅니다.

저마다 자식을 내어놓느라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감탄스럽습니다.


참외의 씨앗과,

늦되게 핀 민들레의 홀씨,

붉은 고추 속의 노랑 동전들은 어떻고요.

제 살 궁리들은 애초부터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않을게요.

스러져가는 것에 대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모두 다 잘 살아가고 있어요.

호랑이콩이 무늬를 이어가고 있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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