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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보홀2. 함께 가는 사람들

두 번째 보홀2

by 김옥진 Feb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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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홀로 떠나기로 예약을 한 후 무안공항 참사가 벌어졌다. 줄이어 비행기 화재도 났다. 원인은 서로 다르지만 미국에서도 두 차례나 비행기 사고가 났다. 잘 알지도 못하는 평행이론을 떠올리니 더 기분이 좋지 않다. 예약금을 포기하고 모두 다 가지 말아야 할까!

마음이 흔들렸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친구의 자녀들이 함께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기 아빠들이 사고를 접하고 걱정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소소하게 의견을 주고받았고 결국 아이들이 있는 친구 두 명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여행에서 빠졌다. 섭섭하고 속상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야자수 나무 아래서 여자들만의 수다를 기대했는데, 꿈으로 끝난 계획이 되었다.

여덟 명 중 남은 사람은 세 명뿐, 보통 두 명씩 방을 써야 하는데 혼자 남은 사람은 싱글 차지가 붙는다. 또 골치가 아팠다. 여기저기 갈 사람을 섭외했지만 급하게 여행에 동행할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어쩔 수없이 남편을 대동하기로 했다. 여자들만 간다고 끌탕을 했던 남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찌 보면 다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은 고맙게도 힘을 쓰거나 통역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오히려 좋아했다. 어쩔 수 없어서 듣기 좋으라고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육십 살이 넘은 여자 셋의 마음은 예고 없는 비행기 사고에 초연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급기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나이니 상관없다며 깔깔거리기까지 했다. 그럴 나이가 되어 얼마나 좋은지... 또래끼리 가는 여행, 편안하게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보홀을 오가는 국적기는 모두 네 개다. 그중 한 개를 제외한 세 편은 밤 열 시경에 떠나 현지 새벽에 도착한다. 우리는 밤 비행기 중 하나인 부산에어를 탈 예정이다. 지난해에도 부산 에어를 이용했다. 모두 다른 기장이 비행을 했겠지만 두 번 다 랜딩이 무척 부드러웠다. 이번에도 그러기를 기대한다.


인천공항 스마트패스 앱을 이용, 안면인식을 통해 빠르게 들어가 검색대를 지나 자동출입국심사를 이용해 일사천리로 입국 수속을 마쳤다. 여행의 일 단계를 안전하게 넘어서인지 슬슬 배가 고파왔다. 출국장 근처에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로 저녁을 해결했다. 뭔가 불안이 올라오거나 몸이 찌뿌둥해지면 생각나는 우리 것, 된장과 김치가 아니겠는가. 먼 길을 떠나는 우리들은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우리 맛들을 떠올렸으리라.

여행객들로 꽉 찼으리라 기대와는 달리 비행기엔 드문드문 빈자리가 있었다. 운 좋게도 세 명이 앉는 자리를 하나씩 차지할 수 있어서 길게 누워, 다른 사람들 보다 편하게 보홀까지 갈 수 있었다.

후끈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필리핀 특유의 향기도? 섞여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또다시 검색대를 통과했다.

팡라오 공항 밖에서 만난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여자 가이드는 12인승 승합 차를 가지고 우리들을 마중 나왔다. 도착 후 한 시간도 넘게 호텔을 돌아다니며 여행객을 내려 주었던 지난해와는 달리 오 분 만에 호텔에 도착했다. 여행을 함께 할 일행은 우리 넷을 포함해 부부 한 쌍뿐이라서 그랬다. 얼마나 좋던지.

코로나를 앓고 난 후에 컨디션이 떨어질 때면 으슬으슬 추워지곤 했다. 밤 비행기를 탄 고단함 때문인지 더운 나라에 도착해서도 패딩이 부담스럽지가 않다. 폴라티에 패딩을 입은 채로 헤난 타왈라 리조트에 도착했다.


기물 파손이나 손실을 대비한 숙박 디포짓을 200달러나 하라고 한다. 별 그렇게 훌륭한 호텔도 아니면서 이렇게나 많은 금액을 맡기라니! 하지만 여행지의 룰을 따라야 하는 것이 여행자의 의무니 어쩔 수 없었다. 별일이 없다면 체크아웃할 때 고스란히 내어 준다니 걱정하지 말아야지. 시계가 새벽 세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슬슬 목덜미에서 땀이 흐른다. 영하 10도의 나라에서 영상 26도의 나라로 오는데 4시간 반이면 충분하다니. 우리 방은 509호, 친구들 방은 505호다. 창을 열고 밤공기와 야자수 그늘에 비친 수영장을 본다. 왔다, 더운 나라로, 세 시간만 지나면 아름다운 바다가 어둠을 뚫고 해와 함께 빛날 것이다. 날 반겨줄 것이다. 반듯하게 각 잡힌 흰 시트 속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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