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사십 대의 마지막 해, 뭔가 조급해지고 불안했다. 아는 요가 원장님의 소개로 명상을 배우러 인도에 갔다. 그곳서 지낸 일주일은 하루종일 명상을 했고 남은 일주일은 명상을 지도하는 방법을 배웠다. 단백질이라고는 거의 없는 식단으로 세끼를 먹으니 몸이 가뿐해지고 몸에서 배출되는 찌꺼기조차 다르게 변했다.
결국 삶이란 받아들이고, 감정을 배제한 채 나를 바라보는 데 있었다. 감정을 명료하게 떼어놓고 바라보면 그렇게 슬프지도, 우울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고 했다. 아기를 받으며 만나는 갖가지의 두려움도 그런 것이라 했다. 나를 바라봤던 그 시간은 아주 맑고 고요했다. 삶 속으로 돌아와 또다시 퇴색되는 상황과 마주했지만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나를 보았다.
시끌벅적한 인도의 재래시장에서 중후한 빨간 버건디 염색약을 샀다. 그것도 세 개씩이나. 실제로 염색을 할지 결심도 하지 않은 채 명료하고 확고한 빨강에 홀린 듯 손이 갔다.
천연염료인 해나 염색가루를 세 개나 산 것은 내가 얼마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는가를 대변하는 숫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염색약 한 봉지는 세 번 정도 염색을 할 정도의 양이므로 최소한 3년 동안 빨강 머리를 하고 다닐 수 있겠다고 계산을 했다. 과연 내가 3년이 넘도록 빨강 머리를 하고 다닐 수 있었을까. 그 정도의 세월이 흐른 후면 지루한 일상이 다시 그리워지거나, 부글대는 마음도 가라앉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르고 곧은 것이 무엇인지 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나를 옥죄며 살아온 익숙했던 갖가지 습관을 빨강 머리로 깨버리고 싶었다. 지금껏 살면서 뾰족해진 나를 표현하는 방법은 고작 쇼트커트를 치는 것뿐. 내가 하고픈 것이 이런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드물게 누군가에게 항변의 표시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면 너무나도 싱거운 도전을 한 내가 한심스럽기도 했다. '그것밖에 못해?'라고 속으로만, 속으로만 외쳤다. 빡빡 깎아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지만 시도는 그저 생각에서 멈춰졌다. 가끔씩 빨간색 염색약이 떠올랐지만 그 또한 늘 삶에 가려졌다. 그러나 빨강 머리로 변신하면 갇힌 상자 안에서 살고 있는 듯한 내가 밖으로 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 같다는 마음은 늘 자리했다.
제야의 종소리는 어찌나 빨리 돌아와 울려대는지, 한 해 한 해가 어젯밤 꿈처럼 사라지곤 했다. 15년이란 세월을 도둑맞은 것처럼 느껴질 무렵 화장실 서랍 구석에서 빨간색 헤나 염색약을 다시 만났다. 몇 번의 이삿짐을 싸면서 빨강 머리카락을 그리워하며 이삿짐 속으로 다시 들어갔었을 빨강 염색약. 미련을 대변하듯 은빛 포장지는 내 머리칼과 비슷하게 바래져 있었다. 인도에서의 다짐은 희미해졌고 그 사이 검은 머리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은빛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그러데이션 된 은빛 머리카락이 멋지다고 추켜세우곤 하지만 거울 속의 흰머리는 가끔 청승맞아 보여 슬퍼지곤 했다.
나이가 들면 머리카락은 왜 흰색으로만 바뀔까. 온 세상의 인종들을 하나로 화합하려는 조물주의 의도일까? 여행을 다니며 만났던 동서양의 흰머리의 노인들을 볼 때마다 내심 동질감이 생기기도 했다. 빨강, 노랑, 갈색, 검은색의 다양한 색의 머리카락을 가졌거나 직모나 곱슬머리, 파마머리처럼 빠글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다양한 인종들 조차 나이가 들면서는 모두 흰색으로 변하다니. 뉴스를 장식하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까만 곱슬머리도, 트럼프의 날아가는 노랑머리도 세월이 지나니 모두 하얗게 되었다.
거의 비슷한 주름과 은빛 머리칼에는 그들만의 살아온 다채로운 나날이 들어 있다. 지나온 나의 삶과도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예쁜 색들이 세상천지에 널려있는데 하필 머리카락만 왜 새하얗게 변하는지 딴지를 걸고 싶기도 했다. 뻔한 이유를 들이댈 과학자들의 설명은 듣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면 어느 시점에서부터 무지갯빛으로 변해도 좋겠고 파란 하늘빛, 아니면 푸석푸석하게 변하는 거 말고 에메랄드빛 산호섬의 바다색을 띤 반짝이는 머리카락이면 어떨까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한다. 누구에게나 시간이 공평하다면 인생의 중반기 이후쯤, 머리카락 색만큼은 점점 더 아름다워진다면?
15년 동안 서랍 한편에 잠들어 있던 염색약은 도로 들어갔다. 언젠가 빨간 머리로 염색을 하리란 생각은 서랍 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3년간 길렀던 은빛 머리카락을 쇼트커트로 잘랐다. 예전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완경의 몸부림마저 사라져 버린 지금, 치렁거리는 긴 머리 3년 가졌던 의미가 희미해졌다.
젊은이의 고뇌도, 무슨 심경의 변화 따윈 없었다. 3년간 기른 머리카락으로 양갈래 흰머리 할머니도 해 보고, 납작한 뒤통수에 숱 없는 머리를 똬리처럼 동여매 보기도 했다. 길어진 머리가 되자 짧은 머리였을 때는 얼씬도 안 했던 핀 가게 앞에서 보석이 달리거나 잠자리 날개 같은 리본 달린 핀을 만지작거리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동안 상자 안에 모아진 갖가지 핀들이 아깝긴 했지만 그간의 즐거움으로 충분했다. 쇼트커트로 보이시해진 머리는 관리하기도 아주 편했다. 남자들처럼 샤워를 하며 세숫비누로 서너 번 문지르고 헹구기만 해도 끝이 났다. 삼 개월에 한 번씩 몇 번의 커트를 하며 1년이 지나갔다.
어느 날 짧은 머리카락 색을 바꿔보고 싶었던 청춘의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나이가 되자 미장원에서 모자를 뒤집어쓰고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아깝다고 여겼던 내게도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느린 걸음으로 미장원으로 갔다. 가을이 깊어 하나둘 나무들이 겨울 준비를 하던 차였다. 슬렁 바람이 부니 마른 잎새도 바람결을 타고 천천히 낙하한다. 어디에선가 아기 손 같은 빨강 단풍잎하나가 발등에 떨어졌다. '아! 빨간색이다.' 싸해진 바람과 아직도 훈훈한 바람이 뒤섞여 콧잔등을 스쳤다.
"제 머리카락을 어떻게 좀 해보세요. 가채를 쓴듯한 검은색만 빼고 다른 색으로 바꿔주실 수 있나요. "
미장원 원장은 그동안 내 머리카락을 언제나 바꿔줄까 하고 벼르던 사람처럼 민첩했다.
그릇에 염색약 몇 가지를 섞는 소리가 나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머리에 바르기 시작했다.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원장님의 대범함에 나는 당황했다.
"이거 나이 든 사람이 하면 아주 세련돼 보여요. 근사해진다니까요!" 벌써 뒤통수에 큰 스푼 하나 정도의 염색약이 적셔지고 있었다.
" 무, 무슨 색인데요?"
"보라색이에요. 다시 흰머리가 올라와도 멋지죠!"
"예? 보, 보라색이라고요? 저 저는 보라색을 싫어하는데..."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원장은 아차 하는 듯 보였다. 내게 무슨 색으로 물어보지 않은 것에 놀란 듯 얼버무리며,
"그, 그럼 무슨 색으로 해 드릴까요? " 갑자기 빨간색이 떠올랐다. 보라색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고, 예전부터 로망처럼 품었던 빨간색 머리칼, 인도에서 사 온 빨강 염색약, 이때다 싶었다.
"빠, 빨간색은 안될까요?"
"원하신 데로 빨간색이 아주 예쁘게 나왔죠? 어떠세요? 맘에 드세요? "
앞쪽에 주로 돋아난 흰 머리카락은 제법 어여쁜 빨간색으로, 정수리부터 뒤통수까지는 하다만 보라색으로, 목덜미에 가까운 뒤통수는 본연의 진갈색으로!
무지갯빛엔 못 미치지만, 뒤통수는 안 보이니까, 정수리도 볼 수 없으니. 이만하면 되었다고 말했다.
빨강 머리 앤처럼 어여쁘진 않아도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빨강 머리를 드디어 했다.
소원 아닌 소원을 이뤘다. 앞에서만 보면 빨강 머리 앤의 머리칼 색인 것이 어디냐.
아뿔싸! 한 달에 1센티씩 길어질 흰머리칼을 합하면 네 가지 색이 된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
어쩌지?
할 수 없으니 지금을 즐기고 그건 나중에 고민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