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컸구나.
15년 전에 별바람이 첫아기를 낳았다. 그 후 두 녀석이 더 태어났다. 올해 큰 녀석은 고1, 둘째는 중2, 막둥이는 초등5학년이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이 제주에 새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구나 풍광에 입이 벌어지는 제주, 만약 그곳을 가게 되다면 만나보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제주에 있는 사쉬요가원에서 자연 출산에 관한 강의를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강의도 중요하지만 잿밥에 눈이 먼 사람처럼 별바람 가족을 떠올린다. 시간은 내버려 두어도 제 발로 저벅저벅 가버려 드디어 만날 날이다.
제주를 다녀온 지가 언제였던가. 옛날 사진첩을 뒤져보니 벌써 8년 전이다. 강의 후 며칠 더 제주에 머물 계획을 세운다. 별바람의 아이들은 잘 컸을까. 나보다 더 훌쩍 커버리지는 않았을까. 어여쁜 두 부부는 어떻게 익어가고 있을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블로그에 쓴 글을 찾아 별바람의 연락처를 찾았다. 가슴이 뛰었다.
별바람과 연락이 닿았다. 일정이 있었음에도 어찌나 반갑게 맞아주던지. 못 본 지 십 년이 넘은 세월이 무색할 정도다. 굳이 집으로 초대한다. 어느덧 어둠이 주위에 깔린다. 바다로 하강하는 해는 주홍빛 노을을 뿌리며 사라진다. 훌쩍 큰 아이들을 기대하는 마음이 들어서인지 붉은 노을이 진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꼬불꼬불 숲 속 한라산 언저리에 자리한 아담한 하얀 주택이 보인다. 어두운 숲에서 검은 줄무늬의 고양이가 사뿐히 뛰어 집 쪽으로 사라진다.
차 소리를 듣고 뛰어오는 별바람의 발걸음이 들린다. 보자마자 한참을 서로 부둥켜안았다. 등을 서로 쓰다듬기만 했다 긴 말이 필요 없다. 현관에 들어서자 이방 저 방에서 아이들이 나온다. 두 딸은 의젓한데 막내 사내 녀석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한다. 인사를 한다. 감격에 겨워 한 명씩 안아 본다. 양막을 헤치고 촉촉한 양수가 묻은 채 내 손 위에서 버둥거렸던 아이들이 이렇게 크다니.
젊었던 시절, 아기들을 받으며 노년을 상상했다. 아기를 받지 않는 시절이 오면 그동안 받은 아기들을 만나며 여행을 해보리라고. 출생률이 떨어진 요즘 조산원 출산 역시 턱없이 줄어들어 한가하다. 어쩜 시간은 모래에 물 스미듯 사라져 버리는지. 슬슬 막연했던 소망을 이룰 시간이다.
오늘, 별바람이 낳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소망의 시작으로 삼는다. 집으로 돌아가면 바래진 옛 출생 등록 장부를 열어보리라.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