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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씌우지 않기

아이는 잘 크고 있다

by 반짝이는 루작가

어느덧 일주일의 어린이집 방학이 끝났다. 예전에는 얼른 아이들이 등원할 날만 기다렸는데, 이번 방학은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고 어린이집으로 보낼 다음 주가 괜히 미안해진다. (자책하는 마음 제발 버렷!! 이 또한 나의 분리불안인 듯)


그동안 첫째가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통에 어떻게 초등학교는 갈 거냐며 혼자 고민이 많았다. 아이의 불안도를 조금씩 낮춰보고자 6세가 되면서 유아체육센터에 보내려 하니 실패, 최근 동화구연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두 번가고 또 실패였다. 둘 다 어린이집을 같이 다니는 쌍둥이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에이, 뭐 어떻게 되겠지 싶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한 학기 동안 내내 울면서 엄마랑 헤어지는 아이가 있다던데. 그 아이가 내 아이가 될 수도 있다고 나름의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방학을 보내면서 나의 생각은 착각이었고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잘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이집을 같이 다니던 여자 친구 한 명과 함께 아침미소목장을 갔던 날도 그 친구가 옆에 있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어느 순간 보니 잘 모르는 아이와 어울려 놀고 있었다. 나에게 다가와 "엄마, 저기 새로운 친구가 나랑 똑같은 여섯 살이래!" 하며 얘기해 주는데 참 반가웠다. 우리 첫째보다 형아처럼 보이는 덩치가 큰 아이와 친구로 지낼 수 있다니. 친구는 내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고 아이가 알아서 맺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들 모임에 끼려고 했던 건 그저 나의 불안 때문이었음을.


다음 날은 일곱 살인 친구네 딸을 데리고 다녔다. 친구네가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딸한테 신경 써주지 못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점심 먹은 뒤에는 오히려 그 딸이 우리 첫째를 데리고 블록방에 가주는 상황이 되었다. 아직 낮잠이 필요한 둘째를 차에서 재우다 보면 항상 심심해하던 첫째였기에 누나랑 블록방에 가보겠냐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거기에 엄마는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지만 첫째는 잠시 고민하더니 용기를 냈다.


둘째 낮잠을 겨우 재우고(형과 누나만 다른 곳을 가니 낮잠을 안 자려고 버틴 둘째 ㅎㅎ) 블록방에 간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입구에 차를 세웠다. 5분 사이에도 수많은 아이와 부모들이 들락날락거렸다. 찰캉 문 소리가 날 때마다 첫째가 우리 엄마는 언제 오나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낯선 형아 누나들 사이에서 불안해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되었다. 예약된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지만 얼른 들어가 보았다. 웬걸, 차분히 누나 옆에 앉아서 열심히 블록에 집중하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오히려 아직 다 조립을 하지 못했는데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묻는 첫째였다.


"선생님! 이건 어떻게 해야 돼요?" 하며 블록방 사장님께 자연스럽게 질문도 하는 씩씩한 모습을 봤다. 마음이 놓였다. 끝나는 시간에 맞춰 다시 오겠다 하고 블록방을 나왔다. 평소에도 집에서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만들고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아이에게 취향저격이었나 보다. 옆에 누나도 있으니 안정감을 느꼈을 테고 말이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그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매우 자연스러웠다.


어린이집 친구들 모임을 하면 나는 누가 제일 좋아, 누구는 내 친구야 하며 아이들끼리 서로 얘기를 할 때 우리 아이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건 나다. 혼자라도 잘 놀고 있는 건 아이인데, 그 마음을 불쌍하게 왜곡해서 보고 있는 건 나였음을 깨닫는다. 이번 방학을 통해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투영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나만 단단해지면 되겠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나를 키워내야 하는 것임을. 그러면 아이는 알아서 성장한다는 말이 이 뜻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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