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도로
초보운전 딱지를 떼고 다닌 지도 몇 년이 지났다. 혹자는 이 시기에 '방심해서' 사고 나기 딱 좋은 때라 한다.
위험한데 안전하게, 거친데 부드럽게(?) 운전하는 나도 그래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하지만 밟고 싶은 질주 본능을 자꾸 막아 세우는 게 아쉽기만 하다. 자유로는 이름만 자유로고 자유롭게 밟지도 못한다.
밤에 혼자 나가 타는 강변북로는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코스다. 일산에 다녀올 때면 굳이 새벽에 넘어오는 데, 그때마다 부모님은 왜 위험하게 밤에 가느냐, 그냥 자고 가지!라고 말씀하시지만, 내가 새벽에 가는 이유는 그저 '밤에 타는 강변북로가 예뻐서'다. 이상하게 올림픽대로에서는 볼 수 없고 느껴지지 않는 풍경. 검은 물이 찰랑이는 게 마치 도토리묵 같고, 그 위에 올려진 반짝반짝한 다리, 정면에는 남산타워, 오른쪽에 늘어선 '강변 뷰' 아파트와 주택, 건너에는 잠실 롯데타워부터 국회의사당, 63 빌딩, 콘래드호텔.
서울의 온갖 랜드마크가 펼쳐지는 곳, 강변북로.
꽉 막힌 강변북로도 나름 버틸만하다. 정체가 이어지면 나는 "Siri야, A에게 전화해 줘."를 읊으며 아무에게나 전화한다. 오랜만에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오늘 있었던 황당한 일에 대해 풀어놓기도 한다. 그러다 정체가 풀리기 시작하면, "네 덕분에 지겨운 길 잘 왔다! 고마워!"하고 또 엑셀에 발을 올린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코스는 단연 동부간선도로와 압구정 도산대로쯤이 아닐까?
초보 운전 종이를 붙이고 다니던 시절 나를 가장 공포에 떨게 했던 길이다. 내비게이션이 이 길을 지나야 한다고 할 때면 눈물이 줄줄, 손이 벌벌 떨렸다. 이상하게도 이 도로 위에서는 끼어들기가 불가했다. 한 번은 압구정에서 옥수역까지 차로 꼬박 2시간이 걸렸다. 물론 눈이 오는 금요일 저녁이라지만, 나는 도로에 끼어 오도 가도 못하고 눈물만 그렁해서는 눈발이 날리는데도 창문을 열고 손을 휘저었다.
"제발, 딱 한 번만요!"
부산에서 운전하기 어렵다는 말은 부산의 이상한 도로 상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진을 하려 2차선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1차선이 사라지더니 2차선이 좌회전 차선이 되기도 하고, 똑같은 좌회전 차선인데 잘못 섰다간 집에 도착하긴 글러 버리는 길이 되어버린다. 내비게이션이 열심히 몇 차선으로 가라고 알려주다가도 이 친구도 '뇌 정지'가 온 듯 이리저리 바퀴를 굴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갑자기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해야 할 상황이 많아지니 그야말로 운전하기 까다로운 도시가 된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강남대로보다 부산 시내 운전이 훨씬 쉬웠다. 깜빡이만 켜면 그냥 다 끼워주는데, 고마워서 비상 깜빡이를 연신 눌러댔다. 내가 렌터카인 '허/하' 넘버를 달고 있어 외지인을 배려해 준 건지, 아니면 내 깜빡이에서 간절함을 느껴준 건지, 여하튼 부산에서 한 달 내내 운전하던 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특히 광안대로 위는 낮이고 밤이고 가슴이 탁 트인다. 부산에 계속 살던 친구가 서울에 상경해서 한 말이 생각났다.
"물 너머에 건물이 있는 게 이상해. 수평선 너머에 아무것도 없는 바다만 보다가 한강을 보니 서울은 너무 빡빡해."
그런 의미에서 광안대로 위를 달리는 건 완벽한 '자유' 코스였다. 부산에 가면 꼭 차 렌트를 하는 이유, 내가 차를 갖고 있음에도 '쏘카 패스'를 사용하는 이유, 그건 바로 광안대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