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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 프란치스코 Jan 18. 2021

장르극, 코로나19

18.  코로나, 무섭다기보다 슬픈

 미디어의 트럼프에 대한 비판이 트럼프의 인기를 무너뜨리려는 의도였지만 동시에 트럼프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춰주었다 한다. 낮은 기대는 트럼프가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냈고, 트럼프가 나쁜 행동을 했을 때조차 트럼프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인식하게 되어 결국 트럼프에 대한 비판의 날이 서지 않는 아이러니한 효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이 있다. 대신 트럼프는 무슨 말을 해도 되는, 정치인으로서는 드문 자유를 얻었다. 


 그런 그가, 코로나 확산 초기에 CDC(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나는 독감에 걸려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조부인 프리드리히 트럼프가 바로 독감 사망자였다고 CNN이 보도했다. 미 CDC 홈페이지에 가면 계절성 독감(Seasonal Influenza)에 대한 통계를 언제든지 볼 수 있다. 2018~2019년에 3만 4천여 명이, 그 전해에는 6만 1천여 명이 독감으로 사망했다. 6만 1천여 명이 사망했을 때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81만 명, 독감에 걸린 사람은 4천5백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트럼프의 말과 팩트 사이의 차이는,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의 확진자 수 차이만큼 나지만(1월 17일 기준 한국 72,340명, 미국 23,097,938명),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작년 국회에서 통계 자료를 인용할 때 제법 차이가 난 사례가 있었다. 2020년 10월,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계청의 사망통계 데이터를 통해 2010년 이후 지난 10년간 독감 사망자가 2,126명으로 한 해 평균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이 약 200명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한국의 독감 사망자가 통상 3,000명에 가깝다고 말했다. 신현영 의원이 인용한 통계청 사망 원인 자료는, 쉽게 말해 사망진단서에 ‘인플루엔자(독감)’라고 적힌 사례들만 모은 것이고, 정은경 청장이 제시한 수치는 인플루엔자(독감)가 합병증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는 사례까지 포함한 통계이다. 2015년 홍콩대 보건대학원 펭 우 교수팀은 한국의 독감 관련 초과사망률을 다룬 논문에서 독감 사망자가 연평균 2,900명이라고 추정했다. 5,000여 명으로 추정한 최근 논문도 있다. 감염학회에서는 통상 3,000명 정도로 보고 있다.


 코로나19를 일반 독감처럼 취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경고는 코로나19를 특별한 지위로 올려놓는다. 특별하다는 것에는 다르거나, 변칙적이거나, 지나치다는 의미들이 포함된다. 이런 특별함의 의미들은 주로 다른 것들과의 비교를 통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독감처럼 취급하진 않더라도 처음 보는 것을, 익숙한 어떤 것과 비교하는 것은 학습자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의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코로나19를 독감의 후유증과, 독감의 치명률과 비교하게 된다. 다행히 코로나19 사망자는 한국의 통상적인 독감 사망자인 3,000명에 미치지 못한다. 민주당 의원실에서 나온 ‘10년 동안 2,000여 명’ 대신 3,000명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지금 우리의 코로나 사망자 통계가 합병증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단, 여기에는 우리의 고강도 방역으로 감염자가 적었고, 그에 비례해서 사망자가 적게 나온 점이 반영되지는 않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처럼 고강도 방역을 하지 않는 일본과 비교를 해보면 어느 정도 우리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은, 지금은 긴급사태 확대 등 다급한 모습을 보이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와 비교해보면 고강도의 방역이라기보다 중강도에 가까운 느슨한 방역을 해왔다. 중앙방역본부가 제공하는 국외발생상황을 보면 1월 17일 현재 일본의 사망자는 4,380명이다. 일본의 인구는 2020년 추정치가 1억 2천만 명을 상회한다. 우리는 5천2백만이다. 우리 인구의 두 배가 조금 넘는다. 조금 거칠지만, 우리 인구가 일본의 절반이라 하자. 인구 대비 사망자를 맞추자면 현재 우리 사망자가 두 배여야 한다. 현재 기준 1,250명 정도니까 두 배면 2,500명이 되어야 한다. 2,500명이 적지 않은 숫자지만, 그렇다 해도 통상적인 독감 사망자 수에는 미치지 못한다. 적어도 치명률이 지나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와 많이 달랐던 것은 한때 미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폴리오(소아마비)다.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알려진 ‘네메시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왜 폴리오는 여름에만 공격할까?’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성 감염병인 폴리오는 여름에 퍼지다 겨울이면 자취를 감췄다. 무엇보다 고령자들에게 위험한 코로나와 달리 주로 어린아이들이 희생자였다. 트럼프는 임기 중 두 번이나 탄핵당한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될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4선 대통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39살에 폴리오에 걸려, 일부 의학사가들은 그 나이에 감염되었을 리가 없다며 길랭바레 증후군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정도였다.


 우리나라 코로나19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80세 이상이다. 1월 17일 현재 기준 56%를 차지한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왜 우리는 80대 이상에서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올까? 고령자분들이 공포에 떨어야 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강해져서 예전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80까지 사는 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80대까지 사시다 80대에 돌아가시는 분이 많다는 뜻이다. 평균 수명이 60대였다면, 사망자의 대부분은 60대였을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망자 통계를 보면, 한국 남성 사망자 중 34%가 80대다. 여성의 경우는 62.4%이다. ‘80대 남성’의 경우 코로나19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조금은 유의미한 경고가 될지 모른다.   


 코로나19가, 폴리오처럼 어린아이들을 희생자로 삼았거나, 연령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치명적이었다면 우리는 더욱더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다행히, 코로나 19의 진행 양상은 그렇지 않다. ‘다행히’라는 말이 고령자를 외면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호흡기 질환은 하나의 위험요소다. 노인들은 감기에 걸려도 폐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사망에 이르게 될 수 있다. 지금뿐 아니라 늘 그랬다. 지난 10년 사이 사망원인 중 가장 변화가 큰 것이 폐렴이다. 2009년 사망원인 9위였던 폐렴은 2019년 암과 심장질환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우리의 고령화와 궤를 같이 하는 추세다. 고령자에게는 감기조차 코로나19 만큼 위험할 수 있다. 혹자는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의 생체 프로필은 자연사한 사람들과 매우 유사하다’고까지 말한다. 이런 말은 ‘음모론’에 삽입하면 매우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매우 자연스러운 말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한편, 우리가 죽음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 행성에서는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로 사람들이 죽는다. 병으로도 죽고 사고로도 죽는다. 다른 이유로 죽는 사람들도 있다. 독감으로 죽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놀란 트럼프는, 어쩌면 17년간 사형집행으로 죽은 사람이 없다는 말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트럼프는 작년 7월부터 사형집행을 다시 시작했고, 그의 재임 시절의 마지막 사형집행이 1월 16일 이루어졌다. 인간 행성에서 또 한 명이 사라졌다. 


 문득, 코로나19가 무섭다기보다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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