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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Feb 03. 2021

오만장의 사진 중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그 해맑던 미소


솔직히 말하자면 미얀마에 대한 첫인상은 ‘완전 별로’였다. 수도인 양곤 시내는 높은 건물이 꽉꽉 차있고, 교통체증은 서울보다 더 심해 보였다. 여기까지 와서 극심한 소음과 매연이라니. 아 괜히 왔나? 경주를 기대하고 한국에 온 외국인이 강남 한복판에서 택시를 탔을 때 이런 기분이려나.




미얀마에 간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발리에서 다음 목적지를 고르던 중 우연히 얻게 된 정보 때문이다. 미얀마를 가려면 원래 비자가 필요하지만, 한시적으로 한국인에게 비자 없이 입국을 허가한단다. 당분간 비자가 필요 없다니 그  혜택을 누려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항공권을 조회해보니 저렴했다. 그냥 그뿐이었다. 여행지를 보고 고른 것이 아니라 조건을 보고 고른 것. 솔직히 언제 이렇게 골라먹기를 해보겠냐며-


일단 대도시인 양곤은 나와 안 맞는 것이 확실하다. 얼른 작은 도시로 옮기기로 했다. 야간 버스를 타고 시골행을 택했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 서울을 동경했건만, 복닥 복닥 한 서울살이를 다 겪어보고 나니 다시 시골이 그리웠던 건가 보다. 시골 마을이 보이자 이제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밍글라바!(Minglaba)



미얀마식 인사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천진해 보이는 미소의 할머니가 손을 흔든다. 고운 색의 옷을 입고, 오색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싼 할머니는 꽤 멋쟁이였다. 패셔니스타 할머니를 담고 싶어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 물으니 흔쾌히 포즈까지 취해주신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도 귀여울 수 있구나. 그 귀여움이라는 건, 할머니가 웃을 때 생기는 자글자글한 주름을 덮을 만큼 밝은 미소에서 나온다.



할머니는 초록색의 작은 열매를 따시더니 먹어보라고 건네주셨다. 생긴 것은 꼭 샤인머스켓을 닮아 달콤하겠거니 하고 받아먹었는데, 아니 떫어도 이렇게 떫을 수가...! 퉤. 이름 모를 열매의 대반전이다. 그래도 뭐, 떫은 감이 몸에 더 좋다니까-



조금 걸으니 학교가 보인다. 나무로 만든 투박한 창문이 활짝 열려있어 의도치 않게 떠드는 아이, 조는 아이, 책 읽는 아이- 다 볼 수 있다. 교복은 흰색 셔츠인가 보다. 셔츠 아래로는 보이지 않지만 아마 론지를 입었겠지. (미얀마에서는 남자들도 치마를 입는다. 론지라고 불리는 미얀마의 전통의상이다.)


미얀마의 초등학교


마침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쉬는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나온다. 아이들과 친해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밍글라바" 이 한 마디면 모든 게 ok.



이 맑은 미소의 아이들은 사실 <정글의 법칙>에도 나왔던 인따족이라고 불리는 소수민족이다. 인따족은 호수 위에 집을 짓고, 호수 위에서 살고, 호수 위에서 태어난다. 땅 위에 살아도 고단한 게 인생인데, 호수 위에 산다는 것은 분명 녹녹지 않은 삶일 것이다. 그에 반해 순박한 아이들의 눈빛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너른 들판 앞에서 말린 생선을 팔고 있는 소녀를 만났다. 미얀마의 천연 선크림이라는 다나까를 발랐지만 예쁜 얼굴임을 가릴 수가 없다.

 

오전에 학교는 다녀온 걸까? 오늘 벌이는 좀 괜찮을까? 설마 가장인 걸까? 어린 나이에 생계에 뛰어든 모습이 그저 안타깝다. 그런데 이렇게 예쁘게 웃어주면 자꾸 눈이 가잖아-


정체 모를 미얀마식 생선구이




사실 장기 여행자들의 최고 난제는 식사도, 잠자리도 아닌 바로 <메모리>이다. 핸드폰 용량은 이미 진작에 꽉 차 야속하기 짝이 없다. 자꾸 저장 공간을 비우라는데 비울 게 있었으면 내가 이미 비웠겠지! 멋진 장면을 담고 싶은데 용량이 없을 때의 서러움은 주차 자리가 없어 빈 공간을 찾아 20분이나 빙글빙글 도는 안쓰러움을 닮았다. 그 서러움을 청산하고자 여행 중 거금을 들여 외장하드를 샀다. 무려 4테라 바이트나 된다. (하지만 곧 8tb를 찾게 되겠지)


4테라 바이트 안의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바로 미얀마에서 만난 아이들 사진이다. 세상에 돈 주고도 사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이 아이들의 미소일 것이다.



한 때 도시의 화려함을 동경했지만 결국 내 마음이 머무는 곳은 소박한 풍경과 따뜻한 사람들이더라.

그래서 나는 양곤은 싫지만 미얀마는 좋다.






이때 떠났던 건 신의 한 수였던 걸까요,

코로나19 바로 이전, 2019년 7월~2020년 4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난 따뜻했던 인연에 대해 기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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