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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좀 해야겠다

(연작소설) 영이의 일기 9

by 민들레


비 오는 날은 아버지가 쉬는 날이다. 쉬는 날이어도 아버지는 술을 마신다. 아버지는 술이 취하면 기분이 좋았다. 술 취한 아버지가 코와 입으로 홍시감 냄새 같은 술냄새를 퐁퐁 뿜으면 나도 술을 마신 것처럼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오빠도 모처럼 함께 있었고, 엄마는 집에 없었다.

“영이야, 공달아.”

우리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다정하다.


공달이는 오빠의 별칭이다. 오빠가 공달(윤달)에 태어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오빠가 꽤 클 때까지도 엄마 아버지는 영호라는 이름보다 공달이라는 이름을 더 애용했다. 서울로 이사 오고서 오빠가 공달이라는 이름을 더욱 싫어했기 때문에 엄마 아버지는 주의를 했지만 습관대로 ‘공달아’ 하고 부르는 때가 많았다. 영숙 이모는 좋은 이름 놔두고 공달이가 뭐냐며 꼬박꼬박 영호라고 부르는데 할머니도 별생각 없이 ‘공달아’ 하곤 했다. 내가 오빠를 놀려주고 싶은 심보가 발동하면 ‘공달이 오빠.’ 하고 글자마다 힘을 꾹꾹 주어 불렀으므로 오빠는 내 입에서 ‘공’ 소리만 나오면 인상을 찌그려뜨렸다.


아버지는 우리를 불러놓고 할 말을 까먹은 사람처럼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그러더니 길게 한숨을 내쉰다. 아버지는 이 말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 느그덜 공부 잘 혀라잉. 애비는 느그만 믿고 산다.”

아버지는 오빠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정말 많은 이야기를 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공부는 하지 않고 놀기만 했던 것이 미안해진다. 이제부터는 숙제도 열심히 하고 학원도 빼먹지 말아야겠다. 오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빠는 남자니까 빨리 자라서 아버지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것 같다. 아주 가끔이지만 오빠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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