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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연작소설) 영이의 일기 10

by 민들레


할머니가 죽었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간 것은 엄마와 영숙 이모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나도 엄마와 영숙 이모를 따라 영안실에 왔다. 나는 보라라는 아이를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보라를 본 일은 물론 없지만 그 애가 보라임을 금방 알았다. 보라엄마는 까만 상복을 입었지만 우리 엄마보다 당연히 예쁘고 젊다.

화환이 즐비하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다들 깔끔한 차림인데 추레한 엄마의 차림세만 도드라져 보인다. 하기야 우리 엄마는 어디서든 눈에 띈다. 엄마 몸에서 눅눅한 붕어빵 냄새도 나는 듯했다. 이 날따라 내 꼴이 더 꾀죄죄한 거 같아 약간 우울했다.


목 아래에 하얀 리본이 달린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보라는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예쁘다. 보라엄마는 웃지 않아서인지 왠지 쌀쌀맞아 보인다. 나는 공연히 보라엄마와 보라가 미워졌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라도 보라와 보라엄마를 보게 되어 반가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알았다. 손님이라도 맞을 것처럼 자꾸만 마당을 쓸면서 할머니가 기다린 사람은 보라와 보라엄마였을 거라고.


-누구라도 안 오겄나 싶어 가... 아적나절이믄 치아놓고, 누구던지 오겄지 싶어서, 지달러도......밖에 나가모 사람 천진데 우리 집은 일 년 열두 달 개미새끼 한 마리...... 에유, 행여나 누가 오나 괜히 문밖을 내다보다가, 날이 어두워지모... 안 오는구나......

된 숨을 내쉬느라고 말을 한 번에 하지 못하던 할머니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보라가 나를 보았다. 아니 내가 먼저 그 애를 보기 시작했다. 네 이름이 보라지? 그리고 3학년 맞지? 하고 말하고 싶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다. 아까의 미운 마음은 없어졌다. 할머니가 살았을 때 보라를 만났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은 영안실을 나왔다. 하늘이 무척 파랗다. 파란 하늘에 하얀 거품 같은 구름이 소리 없이 떠다닌다. 앞서 걷는 엄마 아버지 그리고 영숙 이모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나는 매일 듣던 할머니의 빗자루질 소리와 오빠 몰래 내 손에 쥐어주던 단팥빵이 얼마 동안 그리울 것 같다. 가족이 아니면서 한가족처럼 살던 우리 집에서 할머니가 먼저 떠났다. 영숙 이모는 ‘신랑 앞세우고’ 고향에 가는 날이 있을까. 엄마 아버지 오빠와 나, 그러니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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