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할까? 사실상 주위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나만큼 벌고 나만큼 쓴다. 내가 유난히 못 벌거나 못 먹고살지도 않는데 가난 발작 버튼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이 글을 써 내려갈 만큼 이것을 이야기하기 편해졌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아직 나의 가난 발작버튼에 대해 정리된 부분은 없다. 그래서 의식의 흐름대로 가난의 역사를 써 내가 보려 한다.
학생 시절의 시간제 아르바이트 빼고 나의 첫 직장은 뮤지컬컴퍼니였다. 뮤지컬이 좋아서 가방 하나 싸들고 무작정 대학로로 향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위치가 적당한 찜질방 입장권을 서른 장 끊어서 찜질방에서 출퇴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왜냐하면 당시 내가 살던 곳은 경기도 안산이었고 4호선을 타고 쭉 가면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스무 살의 나는 정말 비장한 마음으로 대학로에 입성(?)했다. 운이 좋게 금방 뮤지컬 컴퍼니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내 기억으론 월 60만 원을 받으며 일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행복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날들이 참 좋았다. 60만 원의 수익이 생기자 나는 찜질방에서 월 20만 원 고시원으로 이사를 갔다. 싱글베드와 딱 그 정도 사이즈의 여유공간이 있는 작은 방이었다. 이 작은 방은 나의 천국이었다.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천장을 가로지르는 빨래 줄, 밥을 먹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 최애 뮤지컬을 볼 수 있는 PMP까지, 정말 아늑한 나의 쉼터였다. 퇴근 후 길거리에서 염통꼬치 하나를 사서 고시원 계단에서 먹었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했다. 그랬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부자였다.
이후에도 나는 쭉 프리랜서로 지냈다. 월급을 받으며 일한 적도 있지만 프로젝트 계약이었기 때문에 사실상은 항상 프리랜서였다. 사실 3년 전에 큰 맘먹고 취직한 적이 있는데 내가 아니라 회사 사람들이 나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2개월을 못 채우고 권고사직 당했다. 사실 난 매일 디즈니랜드 가는 것처럼 만원 버스 타는 것부터 줄 서서 먹는 점심까지 회사 생활의 모든 순간이 행복했었다. 아무튼 나의 첫 직장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돈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슨 일을 할 때 재미가 있는지, 가슴이 뛰는지가 먼저였다. 그랬기에 금액이 중요한 적은 없었다.
작살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던 호주에서 1년 반, 해녀학교를 다니기 위해 간 제주도에서 1년, 그렇게 짧고 길게 여행을 다니며 수년.... 아 처음 가난했던 순간이 기억났다. 프랑스였다. 왜 갔는지 모르겠는 프랑스에서였다. 당시 나는 제주도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역마살 제대로 끼어있던 당시 나에게 1년 이상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힘들었고, 다음엔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다가 여행하다 만난 친구들의 다수가 프랑스 사람들이어서 그냥 프랑스로 정했다. 별다른 이유도 없었고 별다른 계획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파리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잘 안 풀렸다. 저녁 시간에 공항에 도착은 했는데 당일 묵을 숙소도 정한 것이 없고 당장 공항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도 정한 것이 없었다. 심카드도 없었고 휴대폰은 먹통이었다. 제주도에 갈 때도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대충 짐을 챙겨 무작정 가서 잘 먹고 잘 살았기에 프랑스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는 내 상황을 전달하면 당연히 사람들이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눈으로 날 쳐다보며 지나갔고 도심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숙소를 추천해 주는 등의 호의는 베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늦은 밤 도착한 파리의 도심에는 마리화나 냄새로 가득했고 캐리어를 끌고 가는 소리에 골목의 사람들이 나를 주목했다. 무서워서 일단 아무 숙소나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당시 나의 전재산은 유로로 환전한 60만 원이 전부였고 그 돈은 파리에서 묵는 2주 만에 다 써버렸다. 어디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방법을 잘 찾아 살아왔기에 금방 일을 구하고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 참고로 나는 불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아마 나의 가난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이후 일을 구하지 못해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개껍질로 만든 액세서리를 주말 시장에 나가 팔아 보았지만 단 한 개도 못 팔았고 결국 비싼 프랑스 물가를 못 이기고 스페인으로 도망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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