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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Dec 01. 2023

근육수집가

100킬로 10회×10세트 스쾃을 진행했다. 운동 유튜버 지피티의 영상을 보고 나도 언제 한번 도전해 봐야지 마음먹었던 것을 지난 주말에 완료했다. 이것은 확실히 빡세다. 웨이트는 무산소 운동인데 난 한 세트 한 세트를 완료할 때마다 1,000미터 달리기를 한 것마냥 헐떡거렸다. 두 다리는 완전히 털렸고, 척추기립근은 무슨 부목을 갖다 댄 것처럼 남의 살같이 느껴졌다. 마치 내 몸의 구성은 붉은 육류인데 척추기립 쪽만 가금류의 흰색 근육결 같은 이질감 느껴졌다. 스콰트는 전신운동이라더니 과연 5세트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세트 끝에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플랫벤치를 붙잡고 헐떡대다 나는 아예 벤치 위로 발랑 드러누워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온몸이 고통으로 비비 꼬였다. 신음소리가 입술사이로 헤집고 나왔지만 다른 회원도 계시고 해서 크게 호들갑을 떨 순 없었다.  별스럽게 큰 신음을 섞는 헬스충들을 나는 극혐 한다. 난 조용히 고통을 씹어 넘겼다.


보통은 날씨가 쌀쌀해지면 컨디션이 떨어지는데 이상하게 이 날은 몸상태가 좋았다. 고관절 스트레칭 효과인가. 왼쪽 고관절에서 자꾸 소리가 나서 다리를 들고 안팎으로 돌리는 내외 전 스트레칭은 자제하고 있었는데 팔로 다리 무게를 보조해 주자 어느새부턴가 소리가 사라졌다. 아마 이때부터 내 스콰트가 훨씬 부드러워진 것 같다. 보통 100킬로를 견착 하면 어깨와 몸통이 바로 경직되 호흡도 뻣뻣해진다. 이렇게 고난을 짊어지면 그날의 견적이 바로 나온다. 짜증 나게 무거운 날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언제 그랬냐 싶게 가볍게 느껴진다. 이날은 고백건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10 by10 이라니. 그전에도 몇 번 시도는 해봤지만, 이 횟수의 무게와 세트는 결코 만만치 않다. 항상 6~7세트에서 무너졌다. 허리는 존나 아프고, 숨은 가빠지고, '친구, 이제 그만 됐잖아, 오늘은 이만하면 됐어' 라는 타협의 목소리가 천정에서 들려온다. 그럼 난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스콰트존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다른 하체운동으로 이동했다. 이런 패턴이 익숙해지자 어느 순간 성장은 멈춰 버렸다. 이른바 초심자의 행운 기간이 지나자 예전만큼의 근육통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하체운동을 한 다음날이면 에구구 곡소리를 내며 변기에 앉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곡소리도 온데간데없다. 엉덩이를 꽉 채우던 근육통이 타노스의 핑거스냅과 함께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사라진 자극을 찾겠다고 무게를 계속해서 쌓아 올려 나가기엔 난 어쩐지 너무 겁 많은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오늘은 스콰트 봉 아래로 어깨를 밀어 넣는 순간, 몸 안에 무언가가 넘쳐흐른다는 것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어깨에 살며시 내려앉은 팅커벨이 '바로 오늘이야'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정성을 들여 무릎 보호대를 두르고 복압벨트를 조인 다음,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개 위대한 도전은 운명처럼 다가온다. '대통령이 되실 걸 알았습니까' 란 물음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을 못 봤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운명 앞에 다가서 있었다'가 일반론이다. 나도 마찬가지.


물론 프리 스쾃이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파트엔 파워랙이 없으니 머신 스쾃으로 진행했다. 머신 스쾃은 레일이 고정되어 있어 좌우 밸런스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상하로만 힘차게 앉았다 일어서면 그만이다. 그래서 진정한 스쾃은 무게를 걸고 한 두 발짝 걸어 나와 좌우는 물론 상하까지 온전히 혼자 책임져야 하는 프리스쾃을 더 쳐준다. 기댈 곳이라곤 두 다리와 몸통, 코어와 악다문 턱관절, 그리고 이 신체들을 지휘할 불굴의 멘탈뿐이다. 나는 권태와 무기력, 허무 같은 비생산의 과잉은 물론, 절망·두려움·울분 등의 감정 과잉들에게도 운동을 추천하는 편이다. 그냥 운동 만능주의자라 보면 된다. 광부는 묻혀있던 석탄을 캐내지만 나는 내게 존재하지 않았던 근육을 캐낸다. 쇠질로 스스로를 파괴하고 덧붙여서 없던 근육을 수집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것이니 어찌 고통이 수반되지 않겠나. 나는 고통성애자이며, 동시에 프루스트의 '행복은 몸에 좋지만 마음을 키우는 것은 슬픔이다' 라는 말을 신봉한다. 행복의 자리에 고통을 대입하긴 하지만...


헬스장에선 나를 더욱 사랑할 수 있다. 전신을 이렇게 오랫동안 비춰볼 기회가 헬스장 말고 또 있을까. 이덕화의 트라이 광고처럼 거울에 바싹 다가서서는 자신의 눈을 들여다 보라. 거기엔 헐떡이는 거친 호흡과 잘 벼려진 투지, 넘치는 나르시시즘이 혼재돼 있다. 조금 전 세트에 최선을 다했다면 외모에 대한 어쭙잖은 자기 연민 따윈 전혀 비치지 않을 것이다. 이 공간에선 추함도 아름다움으로 변한다. 사람이 뜸할 땐 가끔 쉐도우 복싱을 하고, 기회를 봐서 웃통을 벗어젖히기도 한다. 누가 올까 두렵지만 앞태는 물론, 옆태 뒤태 할 것 없이 빠르게 스캔하곤 눈바디 값을 입력한다. 그러면 좀 더 고통이 필요한 곳, 더 빡세게 고립시켜야 할 곳이 어디인지 출력값들이 쏟아진다. 거기엔 거짓이 없다. 순수한 동기부여와 정직한 제련만이 샘솟을 뿐이다. 그런 자신을 응시하는 것은 이상하리만치 쾌감다. 그리고 그렇게 훈련이 끝난 날엔 난 마치 신의 사명을 다한 듯한 깊은 만족감에 휩싸인다. 확실히 내가 캐낸 삶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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