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의 세계사

by 긴오이

침대에 내가 눕고 아내가 눕는다

편안한 밤이다

잠시 뒤 딸애가 저벅저벅

군대처럼 건너와 아내 옆에 누웠다

그리하여

내 옆에는 아내가 눕고, 아내 옆에 딸애가 눕고

다시 딸애 옆에 엄마가 눕고, 엄마 옆에 내가 누웠다

나는 분명 아내와 누웠는데

아내는 딸애 쪽으로 몸을 돌려

나는 아내를 잃고

망국의 백성처럼 서러워했다

쓸쓸히 돌아눕는데

건너편의 신생국은

제국주의의 욕심처럼

어지러운 심사(心思)를 사정없이 밀어붙인다

한 다리를 터억하니 엄마에게 걸치고

사선으로 삐딱하게 영토를 넓혀간다

국경은 아주 비좁아졌다


아내는 마치 열강 사이에 낀 식민지 같다

자면서도 자꾸 긴 신음을 한다

이쪽으로 뒤척였다 저쪽으로 뒤척였다

완전한 엄마도, 아내도 되지 못한 채

정체성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불면의 밤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 억압과 고통이 가여워서, 그리고

어지러운 한 밤의 세계사에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넌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하며

힘껏 제국주의의 한 다리를 걷어찼다

퀸 사이즈만한

독립선언서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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