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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Jun 25. 2022

백석 시인은 술을 좋아하셨나?

백석을 사랑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내가 백석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국수'라는 시를 접하면서부터였다. 아마 그전에 교과서에 실린 '여승'이란 시를 통해 백석이라는 이름은 접했을 것이나 아마 의식에 각인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시를 감상하는 법을 몰랐던 시기였으니까

국 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이것은 오는 것이다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탁 오는 것이다 ----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지 속을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시리워오는 것이다--------그 잡등색이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 같이 오는 것이다-------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 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어렸을 적 아버지랑 눈 덮인 겨울산에서 덫에 걸린 토끼를 실제 잡아보았고, 땅에 묻은 장독에서 동치미도 꺼내 보았다. 엄마가 홍두깨를 밀어 칼국수를 만들어주셨고, 가끔은 밀가루 반죽에 노란 주전자 뚜껑을 덮어 만두피를 뜨기도 했다. 아버지는 큰 고봉에 나는 작은 고봉에 국수나 밥을 받아먹었고, 꼭 새벽 담배를 태우셨던 아버지가 어쩌다 아침 재채기라도 할 때면 앞 개울 너머 국민학교가 들썩하는 것도 같았다. 아궁이에 불을 때던 그 시절에는 정말 아랫목이 쩔쩔 끓었고 어느 집이나 누렇게 탄 자국들이 있었다


시 '국수'는 이런 태생적 감성과 닿아있다.

읽으면서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토속적, 향토적 정서로도 이런 멋진 시를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끼가 더러 눈에 빠진다거나, 산 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온다거나, 쩡하니 익은 동치미 국을 좋아한다거나,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같은 표현들은 첫눈에 반한다는 표현처럼 마음을 사로잡았다. 쉬운 표현인 듯 하지만 막상 글을 써보면 잘 나오지 않는 표현들이며, 무릎을 탁 칠만큼 잊고있던 무언가를 깨닫게하는 참신함, 독창성들을 가지고 있다.  버릴 문장, 단어 하나 없지만 포스팅의 전개상 어쩔 수 없이 마음에 드는 표현들만 나열해 본 것이 저 박스 안의 표현들이다.


시가 감성이라면, 감성이 관통할 때 시는 그냥 다가온다. 쉽게 읽히기도 하거니와 시가 품고 있는 정서가 몸에 착 붙는 느낌이다. 마치 오래 기다려온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든다. 천천히 보고 또 보고, 전문을 타이핑해보기도 한다. 여기 다른 전문 하나를 옮겨볼까

촌에서 온 아이

촌에서 온 아이여
촌에서 어젯밤에 승합자동차를 타고 온 아이여
이렇게 추운데 웃동에 무슨 두룽이 같은 것을 하나 걸치고 아랫도리는 쪽 발가벗은 아이여
뽈다구에는 징기징기 앙광이를 그리고 머리칼이 노란 아이여
힘을 쓸려고 벌써부터 두 다리가 푸둥푸둥하니 살이 찐 아이여
너는 오늘 아침 무엇에 놀라서 우는구나
분명코 무슨 거짓되고 쓸데없는 것에 놀라서
그것이 네 맑고 참된 마음에 분해서 우는구나
이 집에 있는 다른 많은 아이들이
모두들 욕심 사납게 지게굳게 일부러 청을 돋혀서
어린 아이들치고는 너무나 큰소리로 너무나 튀겁 많은 소리로 울어 대는데
너만은 타고난 그 외마디 소리로 스스로웁게 삼가면서 우는구나
네 소리는 조금 썩심하니 쉬인 듯도 하다
네 소리에 내 마음은 반끗이 밝아오고 또 호끈히 더워 오고 그리고 즐거워 온다
나는 너를 껴안아 올려서 네 머리를 쓰다듬고 힘껏 네 작은 손을 쥐고 흔들고 싶다
네 소리에 나는 촌 농삿집의 저녁을 짓는 때
나주볕이 가득 드리운 밝은 방안에 혼자 앉아서
실감기며 버선짝을 가지고 쓰렁쓰렁 노는 아이를 생각한다
또 여름날 낮 기운 때 어른들이 모두 벌에 나가고 텅 비인 집 토방에서
햇강아지의 쌀랑대는 성화를 받아 가며 닭의 똥을 주워 먹는 아이를 생각한다
촌에서 와서 오늘 아침 무엇이 분해서 우는 아이여
너는 분명히 하늘이 사랑하는 시인이나 농사꾼이 될 것이로다


고향을 떠나 떠돌던 백석 시인이 어느 시기에 한 아이를 본 모양이다. 고아원 같은 곳일까? 어디 촌에서 처음 전학 온 학생처럼 낯선 텃새가 무섭고 서러운 아이에게 백석은 그냥 마음이 쓰이고, 그 아이를 으로 달래며, 한편으로 고향에 두고 온 자신의 아이를 그리워한다.


무슨 거짓되고 쓸데없는 것에 놀라서, 네 맑고 참된 마음에 분해서, 다른 많은 아이들이 욕심 사납게 지게 굳게 청을 돋쳐서 우면 반면, 너는 스스로 웁게 삼가면서 우는구나

나주 볕이 가득 드리운 밝은 방안에 혼자 앉아서 실감기며 버선 짝을 가지고 쓰렁쓰렁 노는 아이, 어른들은 모두 벌에 나가고 텅 빈 집 토방에서 햇강아지의 쌀랑대는 성화를 받아가며 노는 그 아이는 어쩐지 나나 우리 아버지의 유년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참 평범하기 그지없는 단어들로 어떻게 이런 아리고 따뜻하고 정서를 담아냈는지.....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 맑고, 참된, 거짓, 쓸데없는, 무고, 순수 같은 단어들이 그냥 막 피어오르는 때가 있다. 방금 목욕을 시킨 아이가 옆으로 누워 곤히 잠을 자거나. 색연필을 가지고 혼자 놀고 있는 아이의 작은 등을 볼 때나, 아직 글자도 모르는 녀석이 소꿉놀이하듯 엄마가 읽어준 줄거리를 대강 중얼거리며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보거나 할 때면 그 귀여움에 마음이 동하며, 정서 자체가 그야말로 순화되는 때가 있다.

찰나의 벅참이나 들뜬 마음이 바로 참되고, 순수하고, 무고한 마음들이다. 시인은 그러한 추상적 개념을 이런 시를 통해 너무나 쉽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선우사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 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 산골에서 소리개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어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낡은 나조반에 흰 밥과 가자미 찬 하나를 놓고 쓸쓸한 저녁을 맞는 시인을 생각한다. 욕심 없어 희어진 세 친구는 같이 있으면 가난해도 서럽지 않고, 외로워할 까닭도 없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단다. 눈물 나게 쓸쓸하지만 이 타협하지 않는 세상밖 의연함은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그 옛날 당신과 나의 자취방이 떠오르지 않는가?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백석 같은 사람이라면 나는 기꺼이 지갑을 꺼내겠다. 마주 앉아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특히 나는 백석 시에 자주 등장하는 '나'라는 인칭을 아주 좋아한다. 보통 작문법에는 '나'라는 말을 가급적 사용하지 말 것을 조언하는데 , 1인칭의 자기 독백조는 몰입도 좋고, 또 어쩐지 더 진실되게 느껴진다. 백석의 시를 읽노라면 누구나 백석의 마음이 된다.


백석의 1인칭 '나'가 가지는 여러 의미가 있다. 

「촌에서 온 아이」에 나타난 백석은 '다른 많은 아이들이 욕심 사납게 지게 굳게 청을 돋쳐서 우면 반면, 너는 스스로 웁게 삼가면서 우는구나'라며 아이를 측은해한다. 그 많은 아이들중에 오직 한 아이를 빼고 모두 욕심사납고 지게굳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홀로 분명코 무슨 거짓되고 쓸데없는 것에 놀라서

그것이 맑고 참된 마음에 분해서 우는 것은 또한 그 자신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그가「선우사」에서 마음을 줄 수 있는 것들은 오직 흰밥과 가재미뿐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모두 욕심없이 희고 파리한 것들이다. 아직 때묻지 않은 것이 아니라 때묻지 않으려고 홀로 가는 것들이다. 세상같은 건 버리고 가는 것들이다. 


시대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백석에 대한 몇가지 비판들이 있다. 아마도 저 모습을 '도피' 혹은 '외면'으로 해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더욱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백석을 사랑한 자야는 그를 잊지 못하고 천문학적인 재산을 시주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아무리 많은 돈도 그의 시 한 줄보다 못하다는 자야의 마음은 그래서 마음을 울린다.

백석이 떠난 시대, 백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모두 욕심사납고 지게굳은 세상에서 그의 외로움과 처연함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시인들의 시인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나도 만날 수 있길 고대한다. 백석을 대신하여 술을 한잔 따를 것이다.

아! 그런데 백석은 술을 좋아하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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