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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Jul 22. 2022

시인을 만나다

이상국 시인 북콘서트를 다녀와서

내 이름은 문학의 밤  /  이상국


내 이름은 문학의 밤입니다
친구들 모임 같은 곳에 가서
누군가 "어이, 문학의 밤, 한잔 받아" 하면

나는 "미친 녀석" 하면서도 덥석 잔을 받습니다.
나의 앨범 속에는 유난히 밤이 많습니다
별이 빛나던 밤이나 눈보라 치던 밤 혹은
너 아니면 죽고 못 살던 밤
그리고 시체 같은 밤도 있었으나
나는 그냥 어둑한 길을 혼자 걷는 밤이 좋았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문학의 밤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부지런해도 아직
문학의 아침이나 문학의 저녁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문학은 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문학의 밤'은 '문학은 밤'과 같은 말이어서
시인들은 대체적으로 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차마 잊지 못할 밤이 있는가 하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밤도 있기 마련입니다
많은 밤들이 물결처럼 왔다가는 스러져가고
나에게는 문학의 밤만 남았는데
아직도 그 어둑한 길을 혼자 다닌다고
친구들은 일부러 즐거운 술잔을 건네는 것입니다
나는 문학의 밤입니다


이상국 시인북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시인의 시집을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백석 시인의 시를 찾아 헤매던 그 써치(search)에서 탐색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상국 시인의 시는 정말 '밤'과 같은 맛이 있습니다. '낮'과 '밤'할 때 그 '밤'말입니다. 저는 시인을 지금보다 젊은 시절(10년 전쯤)에 한번 뵌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시 관련 행사는 아니어서 그의 시 세계를 들여다볼 순 없었습니다. 오늘 본 시인은 모자를 쓰고 계셔서 멀리 그 얼굴을 살필 순 없었지만 대신 그의 '밤'같은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북콘서트는 시인의 시 몇 개를 낭송하고 시인이 직접 그 시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시인의 잘 알려진 「국수가 먹고싶다」나, 「혜화역 4번 출구」에 대해서 시인은 "평범한 시인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시는지 처음에는 궁금했었다" 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이제는 저런 시들이 잘 읽히지 않을 것"이라고 처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왜냐면 이제는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의 정서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혜화역 4번 출구처럼 우리의 아들 딸들은 소를 기르는 대신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우고, 아마도 고향집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잔잔하게 깊어지는 '밤'과 같은 맛이 있는데, 시인은 자신의 시에는 '어쩐지 "저 먼데"가 없는 것 같다'라고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내 이름은 문학의 밤」이라는 시는 시인의 현 좌표가 그대로 드러나는 듯합니다. 아마도 직업으로서는 전혀 인기 없을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외로움 같은 것이 물씬 느껴집니다. 전업 작가를 망설이는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여기도 있지 않습니까? 글만으로 밥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그 길을 용케도 살아온 친구를 격려하는 저 즐거운 술잔들은 정말 즐거운 술잔들인가요? 


시인은 1946년 生입니다. 문단에서도 이제는 원로에 속하시죠.

시인은 시인의 말대로 홀로 깊어가는 '밤'입니다. 어쩌면 문단에서는 비주류에 속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그 비주류에서 주류를 향해 던진 일종의 공분(公憤)에 대해서도 시인은 살짝 언급을 했습니다. 하지만 고민했던 어떤 지점에서 타협하지는 않으신 것 같습니다. 

 <내 이름은 문학의 밤>에는 그런 초연함이 느껴집니다. 저는 한쪽에 비켜서 있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최근에 와서 슬픈 일은 그런 비켜서 있는 것들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도 제 아버지처럼 늙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무대지만 이들을 향해 조도를 높이고 초첨을 맞추는 불빛들이 더 늘어났으면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예우를 표할 때는 그들이 떠나고 없을 때가 아니라, 지금 살아있을 때입니다. 


그는 잊혀가는 농경사회의 전통적 삶과 정서를 노래하는 몇 남지 않은 시인입니다. 오히려 평이한 주제라고 일컬어지는 시의 주제는 시인의 말대로 "저 먼데"가 없는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토양의 양분을 먹고 자라났으니까요. 그 토대를 딛고 선 것입니다. 그리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딸과 헤어지는 이 정서는 촌스러워도 세대를 거쳐 계속해서 이어질 작별들입니다. 


그리고 그 작별에 앞서, 저는 기회가 된다면 시인에게 국수 한 그릇을 얻어먹을 요량입니다. 

그를 위해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올렸으니까요. 시인도 그 사실을 안다면 흔쾌히 원고 값을 치를 것 같습니다.


여름송이에서는 국수 냄새가 난다  /  긴오이


아직 시가가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어디 내다 팔 수는 없고
이른 송이 세 꼭지 따던 날
아버지는 아들네를 불러 올렸다

며느리는 냉큼 물을 올리러 갔다
종종종 엄마는 감자를 찾으러 가고
아버지는 작대기로 호박잎을 들추며
오랜만에 밤색 교자상을 꺼내라고 일렀다

C등급 15만 원은 될까
아버지 일당은 골고루 몸을 찢어
국수 그릇에 나눠 담기고
우리는 둘러앉는다
생각해보면
송이처럼 둘러앉아
국수를 먹을 날이 몇 해나 되겠는가
국수 김은 산안개처럼 피어오르고
달고 무해(無害)한 시간이
             후후
아버지 얼굴 위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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