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긴오이 Nov 27. 2022

굽은 등에 관하여

출근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걸터앉아 양말을 신고 있는데 머리를 만지며 거울 앞에 선 아이의 등이 크게 굽어 있다. 에구 전형적인 라운드 숄더!

등 좀 펴고 다니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 영 고쳐질 기미가 없다.


"등 좀 펴세요. 아가씨!"


사춘기 중학생을 다루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예상은 했건만 당연히 냉소와 짜증의 중간값 정도로 보이는 "알았따구"가 따귀처럼 돌아왔다.


일이 틀어져 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바로 잡을 수 없는 때가 있다.


이 때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떤 물리현상이나 인과관계의 틀어짐이면 어찌 손써볼 요량이라도 있으려나 앞의 경우처럼 한 인격체의 주관과 가치관에 끼어들어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면 대부분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나의 의지나 노력과는 무관하다.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 말 부정하고 싶지만 살다보니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 굽은 등을 고치기 위해서는 굽은 생각부터 고쳐야 하는데 굽은 생각들은 좀처럼 스스로 굽힐 줄을 모른다.


더구나 굽은 것을 굽었다고 말하는 것도 눈치 보이는 세상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야기하는데 그건 뭐 새로나온 아이스크림이냐고 진지 빨지 말라고 가볍게 둘러치는 사람이 오히려 위트있다고 치켜받는 분위기인 듯하다. 보편과 상식을 앞장서 지키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가치들이 조롱받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이것은 확실히 위험하다. 지성, 교양, 준법, 도덕, 정의, 성실 같은 기본 가치가 꼰대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런 가치들을 지키며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 덕분에 당신이 오늘도 무사히 도로 위를 달려 직장으로부터 돌아와 단란한 저녁시간을 맞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가치들이 세상의 조롱과 멸시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무릎꿇어 버리게 되면 그때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지면상의 여러 끔찍한 사건사고들의 주인공이 바로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한번쯤 생각보아 한다.


우리가 사는 시스템은 하나의 큰 덩어리같아서 그 일부의 부스러기가 조금 떨어져 나가도 굴러가는데 큰 상관은 없지만 그 부스러기가 점점 더 커진다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구 5천만을 기준으로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 했어'가 하나나 둘이면 그러려니 해도 백만이나 천만이 되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것이다.


최근에는 개인 미디어 시대의 넘쳐나는 콘텐츠들로 인해 점점 더 가짜와 진짜의 구별이 힘들어지고 있다. 공적 미디어조차 보편과 상식을 보증하지 못하고 있는 세상에서 진실을 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따뜻한 이불을 박차고 나가 당장 세면대 앞에서 머리부터 감고 양치질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기본자세가 언제부터인가 귀찮고 불필요한 일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손바닥만한 핸드폰에서 세상의 모든 정의와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시대적 고민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컨텐츠들의 힘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비판없이 넘쳐나는 정보와 유희속에 허우적 대다보면 굽은 것도 더이상 굽은 것이 아니게 된다


그러니까 등 좀 펴시라고요. 아가씨






















이전 10화 백석 시인은 술을 좋아하셨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