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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Dec 04. 2022

시를 쓰기 전에 먼저 사진을 찍습니다

남자는 시각적 자극에 더 민감하다고 했나요?

저의 경우엔 맞는 것 같습니다. 애써 통계치를 뒤지지 않아도 야동을 보는 성별은 남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미지는 영감을 폭발시킵니다.


빛나는 저녁노을이나 방울한 아침 이슬, 비를 맞고 걸어가시는 할머니, 아버지와 마주 앉아 먹는 막국수, 널브러져 있는 아이의 옷가지 등등, 일상의 어떤 컷(cut)들은 마음으로부터 표현의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표현하고픈지 저 자신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욕구만 강할 뿐이죠.

그런데 일상의 이런 컷(cut)들은 신기루와 같아서 금방 휘발됩니다. 내 마음의 어떤 감정선을 건드린 것은 분명한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이 이미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죠. 좋은 글귀를 생각했는데 자고 일어나면 까먹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저는 이 이미지, 컷(cut)들을 잡아두기로 했습니다.  


사진은 이 이미지들을 잡아두는데 아주 유용한 수단입니다. 저의 경우엔 첫 문장은 잘 떠오르는 편입니다. 문제는 두 번째 문장인데 글 가지를 어디로 뻗어야 할지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확히는 헤맨다기보다 '그냥 멍해진다'가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방향 가늠은 고사하고 아예 그 망망함 앞에 '넋이 빠진다' 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때 사진(이미지)을 들여다봅니다.


시간을 두고 바라보기도 하고, 아니면 일하는 틈틈이 잠깐잠깐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이 짬짬이 시간들을 - 당시엔 물론 시를 쓰고 있진 않았지만 - 담배로 대신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시를 잘 쓰는 방법으로 '사물을 깊이 보고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라' 는 말이 있습니다.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고 통찰하는 직관력을 기르라는 말입니다.  스스로를 평가하자면 저는 직관은 그럭저럭 하나 통찰력에 있어선 한참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음~~ 사진을 찍고 이미지를 노려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미지를 들여다보는 행위는 추상적 관념을 구체화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시에서 중요한 심상의 전개를 구조화시키는데도 매우 도움이 됩니다. 이미지가 영감을 폭발시킨다는 서두의 제언은 이미지가 기폭의 트리거가 되는 동시에, 퍼져나가는 파편들을 재빨리 끌어모아 하나의 퍼즐을 완성시킨다는 의미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완성되는 마인드맵인 셈이죠.


저는 시가 매우 논리적인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봐' 를 설명할 때 사랑=나비가 얼마나 독특하게, 창의있게 설득되느냐에 따라 시를 읽는 맛이 달라지는 것이죠. 정서를 구조화시키는 작가의 독특한 시각에 감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행간을 유추하는 맛도 만만찮고요, 추상적 관념을 구체화하는 이미지 전개 방식에 놀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시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인들은 영화감독과 어깨를 견줄 만큼 남다른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들을 동경하고 배우고 싶습니다.


이미지는 초심을 유지시키는 등대가 되기도 합니다.


시의 초안이 완성되고 분명 흡족해했는데 다음 날 어쩐지 못마땅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저렇게 뜯어고쳐보곤 하지만 고치면 고칠수록 더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형식은 세련되게 변한 것 같은데 원래 생각했던 감정선에서 완전히 멀어진 느낌이 들 때가 있죠. 이런 경우엔 대개 백이면 백 잘못된 것이 맞습니다. 수정된 시가 더 나아 보이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 초안이 더 나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의 경우엔 늘 그랬습니다. 사진은 이때, 그 초심이 무엇이었는지 퍼뜩 깨닫게 해주는 일종의 플래시 역할을 합니다. 번쩍 눈을 뜨게 하죠.


시의 주제는 겉 뜻이 아니라 읽고 나서 독자의 머릿속에서 떠올라야 합니다.


정서의 구조화가 이뤄지지 못한 시는 실패작이며, 그런 점에서 시에도 이른바 빌드업 과정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빌드업이 나아가는 최종 목표는 주제의 이미지화입니다. 저는 그 마지막 골 넣는 능력이 부족하여 시 속에 언제나 사진 한 장을 첨부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이 사진은 그냥 사진이 아니라 시의 한 일부분입니다. 문장으로 이미지화를 완성시키지 못하니 사진의 힘을 빌리는 것이죠. 최근에는 아예 '디카-시'라고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 시의 장르 하나가 따로 생겨났더군요. 저도 그간 일종의 디카-시를 쓰고 있었던 셈입니다.


저는 시를 잘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대신 좋은 시를 알아보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죠. 다만 저도 욕심이 있어서 먼 훗날 좋은 시 한 편을 문단에 올리고 정식으로 시인이란 이름으로 소개받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습작 정도

지만 열심히 트레이닝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포퍼먼스가 나오겠죠. 스스로를 응원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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