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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솔 Jan 05. 2024

나폴레옹 궁전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여행에서 배운 것들

(2014년 4월)


파리 근교 도시 '퐁텐블로'로 향했다. 여행의 목적이 '삶의 목표'를 찾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기대되는 행선지였다. 퐁텐블로 나에게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파울로 코엘료의 이상향 같은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일드프랑스에 위치한 퐁텐블로는 유명한 경영 대학원인 '인시아드(Insead)'가 있는 곳이자,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유배되기 전에 머무른 궁전인 퐁텐블로 성으로도 유명하다.


둘 모두 구미가 당기는 요소이지만, 내 목적은 경영 대학원 인시아드였다.


20대 초반에 회계사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자마자, 나는 경영전략을 파고들었다. 거창한 논문을 본 것은 아니지만 관련 서적을 보며 실력을 쌓았고, 자연스럽게 '블루오션' 전략까지 알게 되었다.


흔히들 블루오션이라는 말을 관용어처럼 쓰지만, 이 용어가 경영전략을 다룬 '김위찬' 교수의 책 <블루오션 전략>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심지어 그가 퐁텐블로 인시아드 대학원에서 블루오션 전략 연구소를 이끄는 소장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책을 보고 경영전략 학자로서의 꿈을 키웠다. 다시 말해, 블루오션 략을 심도 있게 다루는 아드는 나에게 꿈의 학교였다.


어느새 기차는 퐁텐블로 역에 들어섰고, 인시아드로 가는 길을 찾아 헤맸다.


그때 어느 퐁텐블로 시민이 우왕좌왕하는 나를 보더니 한마디를 했다.


"샤또(Chateau)?"


눈치상 성으로 가느냐는 뜻이겠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퐁텐블로 성에서 인시아드가 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고, 나폴레옹의 궁전부터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니 버스를 타라고 했고, 그렇게 버스는 동네를 돌고 돌아 성 근처에 멈추었다.

베르사유 궁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화려한 성이었다는 명성답게, 개성 있는 말발굽 모양 계단과 세련된 궁전이 인상적이었다. 짧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성 앞에 거대한 호수가 있었 백조가 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이미 꽤 지난 상태라, 퐁텐블로 성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여행경비가 부족한 배낭여행자였던 탓에 식사는 샌드위치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 레스토랑에서 마법이 펼쳐졌다.


가장 값싼 샌드위치를 음료도 없이 시킨 나에게, 홀 지배인은 그럴듯한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기품 있게 샌드위치를 서빙하며 불편한 점은 없는지를 세심하게 살폈다.


내가 괜히 위축되어 있자 그는 나에게 당당히 어깨를 펴라는 제스처를 했다. 그러면서 본인도 당당하게 나를 대했고, 프랑스에서 한인민박 주인이었던 조선족 아저씨에 이어 두 번째로 감동을 받은 순간이었다.


이때, 당당하기만 하면 어떤 직업이든 멋진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여행자라는 직업을 잠시 선택한 나, 그리고 레스토랑의 홀 지배인. 누구든 당당하게 본인의 역할에 충실다면 참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스토랑을 나오며 홀 지배인에게 가르침에 대한 감사함의 의미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입구에서 드디어 인시아드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10여분을 걸어가니 주황색 담벼락과 함께 인시아드 정문 나다. 드디어 꿈에서나 그리던 김위찬 교수의 연구실을 눈앞에 둔 순간이었다.

전통 건물이 즐비한 퐁텐블로에서 드물게도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인시아드 대학원은 운이 좋았는지 경비원이 없었다. 주말인지라 개방된듯했다.


마치 벌써 학생이라도 된 듯 학교 안내문을 살펴보고 건물들을 구경했다. 주말인데도 학생들이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었고, 방해되지 않게 빈 공간에서만 사진을 찍었다.


생각과 달리, 어디에서도 김위찬 교수의 연구실을 발견할 수 없었다. 역시 커다란 인시아드에서 교수 한 명의 연구실을 찾는 것은 어렵다 싶었다. 괜히 누군가에게 물어봤다가 외부인인 게 들통 나 쫓겨날까 봐 무서웠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포기하려던 순간, 학교 외곽에서 드디어 연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Blue Ocean Strategy Institute'라는 멋들어진 개별 건물이 연구소로 별도로 존재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잠시 철문 밖에서 틈 안으로 스마트폰을 넣어 사진이라도 담고 돌아섰다.


한 때, 나 역시 머지않은 미래에 퐁텐블로에서 경영전략을 연구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국내 석사를 거쳐 비록 유학의 꿈을 접고 지금은 작가의 삶을 살아가지만, 인생에서 몇 번 없었던 '꿈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던' 경험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가르침을 얻은 날이기도 하고.


여행이란, 분명 상상만 하던 것을 두 눈으로 마주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처럼 동경이 좌절로 바뀔지언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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