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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솔 Apr 05. 2024

영국과 프랑스를 배로 건너보고 싶었어.

페리선의 유일한 동양인

첫 여행이지만 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 때문에 배를 타고 나라를 이동하는 경험도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국을 거쳐 다시 프랑스로 향할 때 영국 남부의 항구도시 '포츠머스'에서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생말로'로 가는 페리를 미리 예약해 두었다.


2014년 당시 한국인에게 흔한 경로는 아니었는지 여행 블로그나 카페에서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페리 회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영어 한참 정보를 찾고서야 좌석을 구할 수 있었다. 가장 저렴한 라운지 좌석을 제외하면 전부 다인실 객실을 통으로 예약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라운지를 선택했다.


런던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몇 시간이 지나 항구도시 포츠머스에 도착했다. 지도 앱을 따라 버스터미널에서 곧장 항구로 천천히 걸었고, 바다를 보 슴이 콩닥거렸다. 포츠머스는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동네 주민들이 나를 흘끔거리는 시선이 유독 강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해변길을 따라 도착한 항구는 거대했고 페리와 군용, 상용 선박이 늘어져있었다. 로는 처음 나라를 이동하는 일정이라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혹시 문제가 생기면 써먹을 만한 표현이 뭐가 있었는지 생각하다가 미리 인쇄해 두었던 예약용지를 꺼냈다. 적어도 증거가 있으니까 무슨 일이 생겨도 대처하기 쉬울 터였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공항과 달리 페리 터미널은 여권 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표를 발급해 주었다. 2014년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같은 유럽연합(EU) 소속이어서 그런 모양이었지만 나는 한국인임에도 권을 검사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던 처음 해보는 도전에 성공해 신이 난 나는 탑승시간이 되 자신만만하게 좌석을 찾아들어갔다. 그리고 라운지가 왜 가장 저렴한 좌석인지 알게 되었다.

비행기 이코노미석과 다를 바가 없다. 배는 저녁 늦게 출발해 다음 날 새벽 6시쯤 생말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러니 한밤중 캄캄한 공용 객실에서 저 상태로 가만히 있어야 했다. 그제야 좀 더 돈을 주고 다인실을 예약할 걸 그랬나 싶은 후회가 올라왔다.


가난한 대학생이었고 홀로 여행을 다니는 처지라 어쩔 수 없었다. 다인실은 라운지 좌석보다 돈을 세 배 가까이 주어야 했으니까.


커다란 배낭을 자리에 두고 배 갑판으로 올라갔다.

포츠머스의 상징인 첨탑과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배들이 캄캄해지는 하늘과 바다 사이를 경계가 되어 갈랐다.

페리는 상당히 커서 상부 갑판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어지는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꽤나 작게 보였 불안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첫 해외여행을 70일 넘게 홀로, 그것도 유럽만 고집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나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순간은 평생 꿈꿨던 로망이었다.

곧 날이 어두워지자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었고 추워지기 시작해서 선내로 들어갔다.

페리 내부는 승객들의 지루함을 달래 줄 수 있는 시설이 가득했지만 나에게는 식당 외에는 흥미를 끄는 게 없었다. 다음날 생말로를 여행할 때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찍 객실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들어가서 보니 의자를 차지하고 있었던 승객들이 취침 시간이 되자, 객실 내 통로에 침낭을 깔고 눕기 시작했다. 나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침낭을 깔고 누웠고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밤 중에 여기저기서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서 잠에서 깼다. 상상을 뛰어넘는 코골이 소리에 다시 잠을 잘 수 없었고, 고민하다가 짐을 정리해 좌석에 두고 식당에 있는 빈 테이블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일어나서 통로로 향하는 순간.

누군가의 머리가 내 발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험상궂은 인상의 덩치 큰 서양인이 자던 방향이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옆으로 엎드렸다.


'걸리면 죽는다.'


누워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기척이 느껴졌고, 나는 숨을 죽이고 그대로 30분 정도 죽은 듯이 있었다. 윽고 다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자, 조심스럽게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미안함에 괴로워하고 있다.


부디 프지 않게 부딪혔기를.

선내에서 기다리다 보니 잠을 청하지 않는 취객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나에게도 무서운 표정을 한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


첫 여행이었던 만큼 잔뜩 긴장해 있었던 나는 갑판으로 나가서 해가 뜨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배낭에서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어서 그런지 견딜 만했고 천천히 동이 터 옴과 동시에 프랑스 해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생말로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맡기고는 얼리 체크인을 신청하고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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