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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22. 2023

돌고 돌아 다시 오는 것들

달라져야 한다


어느 해 설날이었다. 성묘하고 오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아이들 형제와 아이엄마를 만났다. 초등학생인 그 아이들은 평소에도 인사를 잘해서 기특하게 여기던 중이었다. 마침 가방에 만 원짜리가 있어, 하나씩 주었다. 아이들은 선뜻 받지 않았다. 아이엄마도 만류했다. 설날이니까 주는 거라며,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라고 덕담을 했다. 그제야 둘은 고맙다고 인사하며 받았다. 


언젠가 지하철에서였다. 젊은 부부가 아이 셋을, 안고, 업고, 걸리고, 열차를 타기 위해 서 있었다. 아이의 아빠는 큰 가방을 등에 메었으며, 아이 하나를 안았다. 세 자녀를 둔 모양이었다. 삶이 건강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아이 셋을 데리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왜 그 모습이 그렇게도 신선하고 건강해 보였을까.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아이들 셋에게 만 원씩 주었다. 과자 사 먹어, 하면서. 부부는 활짝 웃으며 괜찮다고 했지만 예뻐서 그런다며 쥐어주었다. 가방에 만 원짜리가 마침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한 번은 식당에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다. 마침 지인이 어린이 둘을 데리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누구냐니까 조카들이란다. 가방에 현금이 없었다. 친구에게 있느냐고 물으니 다행히 있단다. 빌려서 어린이들에게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며 주었다. 많은 것도 아니고 만 원씩이다. 지인이 웃었다. 친구는 내게 왜 안 하던 짓을 하느냐고 했다. 그건 그 친구가 우리 아이들에게 돈을 줄 때, 절대 못 받게 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 거다. 웃었다. 나이 먹으니까 이상한 짓을 하게 된다고 하며.


 나이를 먹어가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아는 아이나 지인의 아이를 만날 때, 얼마라도 돈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평생 동안 교육 현장에 있었던 나는, 아기나 어린이들에게 돈을 주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장난감이나 먹을 걸 사주는 것은 괜찮지만. 중고생은 좀 다르다. 내 아이들 어릴 적에 누가 돈을 주면 질색했다. 받지도 못하게 했다. 돈의 위력을 아이들이 일찍 아는 게 좋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딸네 집에 아기를 보러 갔다가 그 이야기를 했다. 딸은 엄마가 변한 것 보니 걱정된다며 농담했고, 사위는 만 원은 많으니까 오천 원씩만 주라고 해서, 모두 웃었다. 마침 있으니까 준 거지 없으면 마음이 있어도 못 준다고 했다. 손자 온이가 태어나니까 아기나 어린이들이 더 예뻐 보인다고 했더니, 딸은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다. 손자들이 생기니 남의 아기도 예사로 안 보인다. 다 예쁘기만 하다. 본디 나는 아기들을 좋아하고 예뻐하지만 더더욱. 


딸의 집에 다녀오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딸이 전화를 했다. 전과 달리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기분이 좋으냐고 물었다. 엄마, 그 돈이 다 온이에게 왔어, 정말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인가 봐,라고 했다. 좀 자세히 말해보라고, 무슨 말이냐고, 채근했다. 딸은 재밌는 일이 벌어진 것처럼 신기해하며 이야기를 이었다. 


딸과 사위가 온이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는데, 생판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온이에게 돈을 주셨단다. 세 분에게서 만 원씩 삼만 원을 받았다며, 엄마가 아이들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서 온이에게 왔다는 것이다. 사위는 어머니가 뿌린 것보다 아직 덜 받았으니 자주 백화점에 가보자고 했단다. 딸과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온이에게 돈을 준 어른들의 마음이 내게 깊이 이입되었다. 


75세 된 어떤 지인은 천 원짜리를 지갑에 많이 넣어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만나는 동네 아이들에게 천 원씩 준다. 과자 사 먹으라고. 그런데 이제 과자도 그것으로 사기 힘들 것 같아 인상해야 할 것 같단다. 그 지인은 평생 바랐지만 자식을 두지 못했다.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아기를 많이 낳고 싶어 공덕을 쌓는 거란다. 이렇게 만나는 아이들에게 천 원씩 준다면, 다음 생에서 그 행위를 어여삐 보고 자식을 많이 두게 할지 누가 알겠느냐고 한다. 아이들을 귀하게 보는 그 마음이 아름답다.


딸의 말처럼 돈이 돌고 돌아서 온이에게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생면부지의 어떤 어른들이 우리 온이를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며 예뻐했다는 게 되니까, 그보다 더 소중한 게 있을까. 누구에게든 사랑받고 좋은 기운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잘될 수밖에 없다. 식물도 사랑받으면 잘 자라고 잎사귀가 무성한데,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내가 한 것을 꼭 되돌려 받으려는 의도는 절대 없었다. 그럴 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나 살기 바빠 누구에게 크게 베풀며 살지도 못했다. 나쁜 마음으로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밖에. 도움을 청하면 최선을 다해 도운 것밖에.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고 그럴 때마다 사람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그나마 여력이 없다.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살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든 내가 한 작은 행동이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돈만 돌고 도는 것은 아닐 터다. 말과 행위도 그렇다. 긍정적인 말을 하고, 배려할 때, 그 말과 행위도 돌고 돌아 내게로 오는 것 아닐까. 말로 복을 짓는다고 하지 않던가. 긍정적인 말, 듣기 좋은 말, 널리 이해하는 말, 따뜻한 말로 이웃과 소통해야 하리라. 올해는 더욱 선한 생각과 행동으로, 삶이 건강하고 풍요롭기를 기대하며, 설날 아침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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