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근육 키우기
삶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인생에 매뉴얼이 어디 있겠는가. 이때는 이래야 하고 저때는 저래야 하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어디 있는가 말이다. 사람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며, 생각하는 바가 다른데. 라이프스타일을 일괄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참고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에 얽매여 맞추어 살 필요는 없다. 삶의 방식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자주 들은 얘기가 있다. 그 나이에 왜, 결혼했는데 어떻게, 그 환경에서 무엇을. 그럴 때마다 속으로 외쳤다. 그래서 어쩌라고, 왜 내 인생을 간섭하느냐고. 때로는 무시했고, 대거리했다. 그럴 때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리라, 나는 나로 살겠다는 다짐이 더 단단해지고 커지기만 했다. 물론 내 경우다. 누구에게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자식들에게도. 사람은 다 생각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니까. 단지, 나는 정해진 어떤 매뉴얼 또는 라이프스타일로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고는 하였지만.
다짐한 것들을 실행해 나가며, 솔직히 두려웠고, 외로웠으며, 힘겨웠다.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도 공유되지 않는 것이 산재했기 때문이다. 내가 시작한 것이니 해내는 것도 오롯이 내 몫이었다. 쓰러질 만큼 허기졌고, 수면부족에 시달렸으며, 몸은 지칠 대로 지쳤었다. 다행한 것은 그래도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때는 정신이 육신을 지배했었나 보다. 그런 날도 때론 있다. 그렇게 산 날이 있다는 게, 죽기 살기로 열심히 살아본 날이 있다는 게, 내 삶의 근육을 만든 것 같다.
삶의 근육, 추상적인 말이다. 그것을 저력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박사논문을 쓸 때였다. 누구의 도움이나 조언 없이, 목차를 도출하고 서론을 써서 지도교수님께 가지고 갔다. 찬찬히 살펴본 끝에 한마디 하셨다. 저력이 있네, 써봐. 저력이라는 말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내면에 형성된 밑바탕의 힘이라는 의미였으니까. 그 힘을 기르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라는 생각과 지도교수님이 그것을 알아주셨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금세 뭐가 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완성하기까지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남편의 발병으로 바닥난 가정경제와 내 공부하겠다고 딸을 휴학시킨 어미의 복잡한 심경을 극복하기 힘들었다. 논문 진도는 나가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괴로웠다. 나의 무지를 탓했고, 밤새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열패감과 씨름했다. 다시 교수님을 찾아갔다. 아는 게 없고 무식해 도저히 쓸 수 없으니 기한을 늦춰달라고. 교수님이 또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이제 정말 쓸 수 있겠다고. 저력 있는 사람이 왜 그러냐고. 그 말에 다시 힘을 냈고 논문을 완성했다.
그 저력, 삶의 근육을 키워주는 것이 무엇일까.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 의지를 견지해 나가는 끈기, 현실에 바탕을 두되,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이상을 바라보는 순수, 더 나쁘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여유, 새로운 것의 유입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누가 알아주든 말든 행하는 정직함, 그런 것들이 아닐까. 교수님이 나를 그렇게 본 것은 아니지만 논문 쓸 수 있을 정도가 된다는 의미에서 하신 말씀이리라.
삶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정과 칭찬이다.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되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라도 해야 한다. 인정과 칭찬을 먹으며 자신감, 자긍심, 자율성 등이 자란다. 자기 앞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방법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사람이 다르고, 처해 있는 환경이 다르며, 현상을 바라보는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 같은 책은 참고 할지언정 그대로 따라서 할 수 없다. 해서도 안 된다. 그 사람이 ‘나’는 아니니까. 삶의 방식은 다 다르니까.
이만큼 살고 나서 깨닫게 된 것이, 삶에는 어떤 것도 실패가 없다는 것이다. 실패가 삶의 근육을 키우는 먹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기 역시 그럴 수 있으며, 실수한 어떤 것도. 그러니 실패와 포기와 실수 등 모든 부정적인 것들도 삶의 근육을 키우는 먹이이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서 아이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도 상당 부분 내려놓았다. 어미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 삶에 대한 두려움도, 어려움도, 힘듦도 서서히 내려놓고 있다.
오늘은 한해의 마지막 날이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그것을 겪으며 헤쳐 나왔다. 회피하지 않았다. 담담히 겪어냈다. 슬픔에 떨며 운 날도, 기뻐 웃은 날도, 아픈 날도, 슬픈 날도, 그리운 날도, 미워한 날도, 아쉬운 날도 있었다. 모두 괜찮다고 나를 다독인다. 지금까지 형성된 내 삶의 근육 그 힘으로 견뎌냈고, 그것을 통해 더 든든하게 생성될 것이므로.
새해가 기대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싫지 않다. 삶의 근육은 더 단단해질 수 있고, 삶을 통찰하는 눈은 더 깊고 빛날 테니까. 신체는 약해질 수 있으나, 정신은 더 말짱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말이다. 삶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르므로, 나는 내 삶의 방식을 견지하며 새해를 맞이하리라. 새롭게 펼쳐질 앞날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을 안고. 언제나 그렇듯 메멘토 모리를 염두에 두면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