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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ug 31. 2023

나의 삶이 더 다채롭기를 꿈꾼다

아직도 나는  


비가 사부작사부작 내리고 있었다. 저녁나절 서쪽 하늘은 오묘한 빛을 발했다. 환상적이라고 할까, 몽환적이라고 할까. 하늘에서 짙고 옅은 보라색이 보이다니. 보고 또 보고 자꾸 쳐다봐도 신기하기만 했다. 사진을 찍었다. 실제로 보는 것과 약간 차이가 있지만 오묘한 빛은 여전했다. 다양한 색깔들이 반영된 듯했다. 그러면 저렇게 오묘한 색을 낼 수 있는 걸까. 다양해야 강할 수 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내 의식은 더 유연해져야 한다.


현직에 있을 때였다. 외부에 출강하는 내게 동료가 못마땅해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나 집중하지 왜 외부 강의를 수락하느냐는 거였다. 내 생각은 달랐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시간만 맞으면 하리라 생각했다. 오가는 시간과 준비하는 시간, 필요하면 자료수집까지, 비용으로 따지면 그 동료의 말이 맞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필요로 하는 곳이니까 간다는 것이 첫째지만, 또 하나는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언젠가는 퇴직해야 할 학교니까.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일자리를 일곱 개쯤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중에 한두 개 그만두어도 생활하는데 타격이 없어야 하니까.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젊었을 때다. 그때쯤 재밌는 사람이 미디어에 소개되었다. 그는 하고 있는 일이 열 개가 넘었다. 교수였다. 그는 어느 날 노점에서 액세서리를 팔았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목욕탕 청소 일도 했으며, 우유배달 등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일자리를 여러 개 가지려던 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그래서 더 외부 강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또 새로운 일자리를 계속 모색했던 것도. 그러다 보니 일곱 개 정도의 일자리를 고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많을 때는 열 개가 될 때도 있었다. 물론 그 일자리 중 어느 것은 없어지거나, 다시 생기기도 했다. 지금 많은 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다양한 일거리를 갖는 것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학교를 퇴직한 지금도 여섯 개 정도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도 가끔 늘었다 줄기도 하지만. 


한 우물을 파는 것도 때론 필요하다. 하지만 여러 개의 우물을 파는 것도 괜찮을 수 있다. 여기서 물이 안 나면 다른 곳에서 날 수도 있으니까. 지금 시대는 한 우물만 꼭 파야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단, 그 우물의 성격과 자신의 능력 그리고 관심을 잘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것에 부합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세상 모든 것들은 참으로 다양하니까. 사물뿐 아니라 사람들의 사유도, 처해 있는 입장과 능력도. 그러니 일괄적으로 말하는 건 위험하다. 


가끔 말하는 이가 있다. 이제 좀 쉬지, 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일중독 아니냐고. 맞다. 나는 어느 정도 일중독이다. 하지만 그게 재밌는 일이고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일이다. 그래서 그다지 힘들지 않다. 힘들어도 그것을 즐긴다. 힘든 다음에 꼭 환희가 따라오니까. 그 후에야 진정한 휴식을 맛보는 것 같기도 하다. 단지, 어느 정도 얽매이는 것은 괜찮으나, 꼼짝 못 하게 얽매이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일중독처럼 보여도 내가 할 만한 정도 일만 하고 있는 셈이다.


또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벗어나지 않고 즐기는 것이다. 간혹 힘에 부칠 정도로 일할 때가 있다. 그것도 즐긴다. 그런 것 있잖은가. 산행할 때, 온 힘을 다해 기력이 쇠할 정도로 오르고 나서 맞는 산바람, 그때 맛보는 쾌감 말이다. 간혹 힘에 부치게 일하고 나면, 나는 그런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어쩌다 힘들게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하는 일은 강의나 강연, 청탁받은 원고를 쓰는 일이다. 일할 때가 있으면 쉴 때도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둔다. 


저 하늘의 색깔처럼 다양한 일거리를 갖기 위해, 편의점이나 생과일주스 가게를 생각해 본 적 있다. 그건 힘에 부치는 정도가 아니라, 시쳇말로 영혼과 육체를 갈아 넣어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일 것 같아, 시작하지 못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비어 있는 상점을 보면, 불쑥, 편의점이나 주스 가게를 떠올리곤 미소 짓는다. 요즘엔 카페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 세 가지는 내게 불가능한 일거리라는 것을 익히 잘 안다. 그저 그래볼 뿐이다. 


하늘이 저렇듯 오묘한 색깔로 보이는 것은 다양한 세상의 색이 반영되어서 그렇단다. 내 삶의 여정에 다양한 일이 반영되어 오묘한 색으로 빛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니, 좋으리라. 다른 곳을 보다 다시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또 다른 색깔로 바뀌어 있었다. 곱다. 붉은색과 노란색, 보라색과 회색이 주된 색깔이지만 그 안에 더 많은 다양한 색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리라. 다채롭다. 나의 삶도 더 다채롭기를 꿈꾼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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