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일을 하나만 갖고 있어서 안 된다는 생각을 2000년대 초부터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하는 일들을 늘렸다. 부정기적인 강연이나 특강도 요청이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고 했다. 주된 일은 대학 강의지만.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 영향이었다.
그 책을 읽고 ‘노마드’적인 삶을 사는 게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도 읽기를 권했던 책이다. 이제 21세기의 삶은 정착민보다 유목민으로 살아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우물을 파는 직업이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몇 가지씩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책을 읽고 생각의 전환을 가져보라는 의미에서 읽기를 강력히 권했는데. 얼마나 그 책을 읽고 생각의 전환을 가져왔는지 알 수는 없다.
나는 그랬다. 크고 좋은 치즈를 가질 수 없다면 작고 소박한 치즈를 여러 개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내 삶의 방식은 그 책을 읽기 전에도 비슷했지만 읽고 난 후, 더 확고해졌다. 심지어 일을 열 개 정도로 늘려볼 생각까지 했다. 그것은 크고, 작고, 수입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된 일이든 부수적인 일이든 그만두는 때가 올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일이 있기 때문에 생활의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은 무언가 아쉽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그렇다. 물론 하는 모든 일들이 연관성을 갖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 장단점을 갖고 있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의 성격은 대부분 강의나 강연이지만 약간 다른 것도 있다.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 나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일이라 해도 마다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만큼 흥미롭기도 한 것이니까.
내가 대학 밖의 일을 이것저것 하기 시작하자, 동료 교수들이 말했다. 뭐 하러 외유를 하느냐고. 대학에서 자리 잡을 생각하라고. 내 생각은 달랐다. 대학의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대학도 달라지고 있었다. 정년트랙을 거의 뽑지 않았고, 전임이라 해도 비정년트랙이 대부분이었다. 전임 자리는 희소했으며, 거기에 모든 걸 걸기엔 내 나이가 많았다.
일을 오래 하고 싶었다. 배우고 익힌 것을 대학에서만 쓰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전임이든 비전임이든 만 65세까지만 강의할 수 있다. 석좌교수나 명예교수는 좀 더 할 수 있지만 그것도 그다지 길지 않다. 적어도 60대 후반이면 대학사회에서는 모든 걸 내려놔야 한다. 나는 대학에서만 있겠다는 생각을 바꾸었다. 어디서든 내가 쓰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 밖에서도 내가 할 일들이 꽤 있었다. 스스로 프리랜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따라 일을 하는 것도 결정했다. 하고 싶은 건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하지 않았다. 수입의 고하나 내 능력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만 골라했다. 나는 프리랜서니까. 내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했다.
내가 고려하지 않은 게 일의 대가에 대한 것이었다. 대가는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것의 많고 적음은 일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심지어 무료로 봉사한 경우도 있었다. 내 의지가 있다면 그것도 기꺼이 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꺼려지면 절대 하지 않았다. 내 명예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체면 같은 것에서 자유롭게 결정했다.
그런 결정은 내 자존감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보람을 안겨 주었다. 꼭 대가가 많고 적음이 보람과 비례하지 않았다. 내가 자율적으로 결정한 일은 언제나 보람과 기쁨이 있었다. 그것이 무료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대가의 고하에 따라 결정하지 않았던 것은 잘한 일이었다. 순전히 나의 선택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한 것은 탁월한 것이었다.
지금은 주된 일이었던 대학에서 퇴임했다. 그러나 하는 일은 더 늘어났다. 내가 퇴직한 것을 알게 된 기관에서 연구소장 제의를 했고, 숙고 끝에 허락했다. 대가가 따로 있는 일은 아니다. 내가 해온 어떤 하나의 일과 깊이 관련된 것이어서 생경하지 않다. 정해진 대가가 없기에 부담도 없다. 그러나 보람과 의미 있는 일이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비슷한 종류이긴 하나, 여섯 가지 정도 된다. 대학 강의는 그만두었지만 지금까지 내게 축적된 노하우를 대중들과 나누고 있다.
앞으로 내가 또 어떻게 어떤 일을 더 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그것의 결정은 지극히 나의 자유의지에 달렸다. 나는 유목민의 삶을 지향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래서 작은 여러 개의 치즈 창고를 발견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노력할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21세기의 삶은 유목민으로 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