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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ug 08. 2023

아들은 나를 여자친구로 착각한다

착각엔 커트라인이 없다

    

마흔두 살 아들은 여자친구가 없다. 여자사람친구는 즐비하다. 모두 결혼했다. 그중에 하나 진즉에 골라잡아 결혼했으면 얼마나 좋으냐고 했더니, 친구가 어떻게 아내가 될 수 있느냐고 한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친구가 아내 되고, 남편도 되는 것 아닌가. 아들은 그렇지 않단다. 친구는 그냥 친구이고, 여자친구는 처음부터 여자친구여야 한단다. 그런 이상한 논리를 펴는 것 보면, 내 아들이 이상한 게 틀림없다. 아무튼 지금, 아들은 여자친구가 없고, 사귈 생각도, 사귈만한 사람도 없단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여자친구로 착각하는 것 같다. 퇴근할 때도 그냥 하면 되지, 전화를 한다. 엄마, 한 시간 후에 퇴근해요. 어쩌라고. 우습지 않은가. 한 시간 후에 퇴근할 것을 왜 미리 예고하는지. 그러다 퇴근할 때 또 전화한다. 엄마, 퇴근해요. 어쩌라고. 그래도 대답은 늘 살갑게 해 준다. 응, 그래. 조심해서 와,라고. 지하철에서 또 전화한다. 지금 막 지하철 탔어요, 라면서. 집에 올 때까지 네다섯 번 정도 전화한다. 심지어, 아파트 앞에서도 전화한다. 엄마, 집에 다 왔어요. 2분 후에 들어가요,라고. 정말 어쩌란 말인가. 그냥 들어오면 될 것이지. 


그뿐 아니다. 작업실에서도 수시로 전화한다. 날이 뜨거우면 더우니까 바깥으로 나가지 말라고, 에어컨 꼭 켜고 있으라고, 물 자주 마시라고, 지금 뭐 하고 계시냐고. 가끔 이 세입자가, 아니 하숙생이, 그것도 아닌 아들이, 나를 여자친구로 착각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건, 그런 일련의 행동 때문이다. 이런 정도로 자상한 남자라면 여자친구가 생길 만도 한데, 어째서 홀로란 말인가. 어서 여자친구가 생겨서 결혼하면 내 걱정이 없을 텐데.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서도 나를 부른다. 엄마, 아들 왔어요. 참나! 언제부터 그리 살가웠다고 아들아들, 엄마엄마. 그 엄마 하도 불러서 다 닳겠다,라고 하면 씩 웃는다. 아들은 땀 줄줄 흐르는 팔로 가볍게 포옹한 후, 도시락을 꺼내놓고 욕실로 들어간다. 빨래가 건조대에 널려 있는 걸 보면 또 씩 웃는다. 그 의미를 안다. 혼자 오피스텔에서 지낼 때는 집에 들어가도 빨래해야지, 설거지, 청소해야지 쉴 틈이 없었단다. 그러니 건조대에 빨래 널린 것만 봐도 웃음이 나오나 보다. 


아들은 축구선수 아무개 열렬한 팬이다. 노트북에 그 축구선수의 골 넣는 장면이 녹화된 게 수도 없다. 시간만 나면 그걸 내게 보여주며 설명한다. 이건 어느 나라 어느 대회에서 골 넣는 장면이고, 저건 또 어느 장면이라며. 나도 물론 축구를 좋아한다. 그래도 깊은 밤에 그 장면을 졸린 눈으로 보며 설명 듣는 건 곤혹스럽다. 그래도 참는다. 아들이 신나서 설명하는 걸 외면할 정도로 공감능력이 없진 않으니까. 추임새를 넣으며, 칠팔십 년대 축구선수 이야기를 꺼낸다. 나도 이만큼 축구를 좋아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읽고 있는 책에 대해 토의 내지 토론할 때도 있다. 창작방법이나 문학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예술과 문화 전반으로 번져나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뜬금없이 말했다. 저는 엄마를 잘 알지 못했어요,라고.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엄마가 이런 분이라는 걸 몰랐단다. 이런 분이라니, 넌 나를 어떻게 봤는데?라고 물었다. 깐깐하고 완벽주의적이어서 무서웠단다. 참나! 어이없다. 나이 마흔두 살 젊은 청년이 늙어가는 어미를 무서워했다니, 누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모르고 있다. 진정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겠으나 그렇게 보이기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의 속내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왜 있던가. 이 나이쯤 되니 가끔 그게 눈에 보인다. 그래도 모른 척 넘어간다. 어쩌면 내가 잘못 볼 수 있는 거니까. 그 말을 아들에게 해주었다. 보이는 게 다 아니라고.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아들이 웃었다. 그건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이잖아요, 하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 별것 아닌 걸로 마음이 상했다. 설거지를 하는데, 아들이 와서 묻는다. 서운하셨어요?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에그, 죄송해요. 엄마, 마음 푸세요. 내 얼굴을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며 웃기려고 했다. 짐짓 더 화난 척 말하지 않고 그릇을 닦고 헹구었다. 엄마, 가만 보니 제가 엄마 얼굴 닮았어요. 옆모습이 꼭 저예요. 얼굴을 내 코앞에 들이밀며 보라고 한다. 웃음이 쿡 터졌다. 삐친 여자친구를 달래주는 것처럼 애교를 부리는 아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작업실로 출근하는 아들은 버스정류장에서 또 전화를 했다. 버스 십 분 후에 올 거예요. 다녀올게요, 엄마! 어쩌라고. 그래, 잘 다녀와. 살가운 것 같은 내 목소리를 듣고서야 마음이 놓이나 보다. 아들은 나를 여자친구로 착각하는 것 같다. 아니 착각한다. 어느 날 어디서 진짜 여자친구가 나타날까. 하루빨리 나타나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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