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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ul 19. 2023

월 삼십, 하숙집

 티격태격 오순도순

    

그렇다. 인간관계는 모두 그거다. 그거 때문에 화목하고 그거 때문에 싸운다. 개도 안 물어간다는 그거.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지는 그거. 그거 때문에 세입자, 아니 하숙생, 아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티격태격했다. 솔직히 말하면 의견충돌. 인간관계에서 의견충돌이야 늘 있는 거지만, 개도 안 물어가는 그거 때문에, 귀하디 귀한 아들과 부딪친 건, 어른으로서, 어미로서 품위 손상하는 일이었다.


함께 살기로 했으니, 일정금액의 생활비 내지 수고비 내지 월세 내지 하숙비랄까 하는 것을 지불해야 하는 건 마땅하다. 미성년자가 아니고 백수도 아니니 더더욱. 가정을 꾸려 가장노릇을 해도 할 나이 아닌가. 아무리 캥거루족인지 뭔지가 있는 작금이라 해도. 입 밖으로 그 이야기를 내놓기 힘들었다. 남편 밥은 앉아서 먹고 자식 밥은 서서 먹는다는 말이 있잖은가. 결국 자식이 주는 것으로 밥을 먹는 격이 될 수 있으니,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귀추만 기다리는 것도 말끔하지 않았다.


시장조사가 필요했다.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참고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대로 살고 있는 경우, 우리 아들처럼 독립했다가 들어온 경우, 결혼생활 하다가 싱글로 돌아온 경우, 이제 막 취직한 경우 등이다. 어느 집은 얼마를, 또 어느 집은 얼마를 내놓는다고 했다. 시장조사 결과다. 얼마가 적당할까. 시장조사를 했어도 우리 경우와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다양한 변수가 존재했다. 더구나 우리 아들은 예술가 아닌가. 아, 그 예술가라는 것 때문에 더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농담 속에 진담이 들었다고 슬쩍 던졌다. 가장이 들어왔으니 이제 가장 노릇 제대로 해보라고. 나를 힐긋 보더니 히힛 웃는다. 저 웃음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난처해도 히힛, 좋아도 히힛, 늘 웃음으로 눙치려 한다. 웃을 때 표정은 아주 그냥 쥑인다. 이상한 노릇이다. 저 웃음에 넘어오는 아가씨가 없다는 건. 고슴도치 어미라서 그럴까. 그것이 이상하기만 하다.


“못 알아들은 건 아니지?”

“네, 그럼요. 당연히 드려야죠. 제 나이가 몇인데요.”

“그래? 얼마나?”

“이십만 원요.”

“뭐얏! 당장 방 빼.”

“네? 무슨 말씀이세요?”

“그건 너무하잖아. 관리비도 안 되는데. 적어도 관리비는 부담해야지.”

“에이! 엄마와 아들 사이에 그 문제로 티격태격 품위 손상되잖아요.”

“품위고 뭐고, 됐어!”

“더는 곤란해요. 나중에 더 드릴게요.”

“나중, 그건 안 믿어. 어렵다면 짐 싸서 나가는 게 좋겠어.”

“에고, 알았어요. 그럼 삼십. 됐죠?”


되긴 뭐가 돼, 소리가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티스트이며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낭만주의자 아들에게 더 이야기해봤자 감정만 상하고 품위유지만 안 될 것 같아서. 줄 놈이 즐겨야지 받을 놈이 즐겨봤자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하숙비는 선불이어야 하는데, 그 말을 못 했다. 다시 꺼내기 저어됐다. 줘야 주는 것이 되고 말았다. 월말에 줄 건지 바로 줄 건지 원. 이렇게 말끔하지 못하다니. 모자지간에 말끔한 것을 기대한 것도 어불성설이었는지 모른다. 설마, 내 건 내 거고, 어미 것도 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정도로 만무방인 아들은 아니니까. 일단 월말까지 기다려야 하는 수밖에. 다시 그걸 입에 담는 건 나도 내키지 않으므로.


월 삼십 하숙집, 그렇다. 나는 월 삼십만 원에 하숙을 친다. 안방 내줘, 빨래 해줘, 청소해줘, 거기다 가장 중요한 삼시세끼 밥 해줘. 이렇게 가성비 좋은 하숙집이 있을까. 호구 잡혀도 제대로 잡힌 게 틀림없다. 어느 하숙집이 삼시세끼 식사를 책임진단 말인가. 아들은 아침에 작업실에 가면서 도시락 두 개를 챙겨가지고 간다. 십 년 나가 살더니 매식이 지겹단다. 그러니 어쩌랴! 도시락을 쌀 수밖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결국 삼시세끼를 책임지는 하숙집아주머니가 되었다. 월 삼십에.


아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나가고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온다. 묻는다, 좋으냐고. 아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말한다. “그럼요, 월 삼십에 이런 서비스를 받는데요. 가성비 최고죠. 히힛.” 돌아서서 나도 웃는다. “그뿐이야? 빨래도 해주고, 상담도 해주고.” 덧붙이는 내 말에 아들은 또 히힛 웃는다. 그러면 되었다. 아들이 웃는데 더 이상 뭘 바라랴. 이렇게 현실감 떨어지는 어미로 전락하다니, 냉철한 이성은 어디로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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