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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Oct 20. 2023

어쩌다, 하숙

빗나간 예측


집주인 행세를 좀 해보나 했더니 이거야 원! 처음부터 그 생각은 얼토당토않은 거였다. 그는 세입자가 아니라 하숙생이었다. 나는 졸지에 집주인에서 하숙집 아주머니가 돼버렸고. 그 사실을 하루 만에 알았다. 꿈에도 원치 않았던 일, 일이 그렇게 흘러갈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하숙생은 아침 일찍 나가서 오밤중에야 들어왔다. 그럼 아침 한 끼만 해주면 되리라고 미리 짐작하기 없기. 예측이 빗나가는 일은 다반사 아니던가.


하숙 들어오기 전에 그는 철저히 위장했었다. “밥 해줘야 하니?”라고 물었을 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니라고 했다. “그럼 빨래해줘야 하니?” 그것도 역시 에이, 그럴 리가요,라고 했다. 빨래도 밥도 각자 해결할 거라고 믿었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는 세입자니까. 내가 어리석었다. 같이 먹게 되면 먹고, 따로 먹게 되면 먹으리라고, 너그럽게 마음먹었다.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제가 기가 막히게 된장찌개를 잘 끓이거든요. 요리도 몇 개 할 줄 알아요. 그런 것도 해드릴게요,라고.


그 말을 그대로 믿은 건 아니었다. 십 년 독립해 살았으니 그런 정도야 하려니 했다. 은근히 그가 해준다는 요리가 궁금하기도 했다. 팔자에 없는 집주인에서, 하숙집 아주머니로, 급기야 요릿집 고객으로. 세상 일 참 모른다고, 세입자 들이기를 잘한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벌써 일주일이 다 돼가도록 요리는커녕 커피 한 잔 내려주는 일 없다. 그는 철저히 하숙생으로 살고 있다.


거기다 아침 한 끼가 문제 아니다. 그는 철저했다. 점심 저녁까지 세 끼니를 확실하게 챙겨 먹는 하숙생이다. 점심과 저녁 도시락을 가지고 작업실로 가기 때문이다. 이유는 있다. 하나, 음식 값이 비싸다. 둘, 사 먹는 음식은 속이 편치 않다. 셋, 그림 그리다가 밥 먹으러 나가면 맥이 끊긴다. 하숙생에게 들은 바로는 그 정도다. 뭐, 이해는 간다. 하지만 두 끼 도시락을 싸준다는 게 어디 쉬운가. 그는 그냥 먹는 반찬 조금과 밥만 싸주면 된단다. 말이 쉽지.


말 쉽게 하는 건 그의 특성이다. 세상천지에 어려운 게 없는 사람이 그 하숙생, 바로 내 아들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처음엔 능력을 가진 아이일 거라고 믿었다. 하긴 뭐, 네 살 적에 한글을 스스로 깨쳐 편지까지 쓰던 아이지 않았던가. 영재라고, 신동이라고, 이러다 우리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 아니냐고, 남편과 들떴던 적도 있잖은가. 나중에 알았다. 그건 그냥 그 아이의 성향이라는 걸.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함함하다는 말이 있다. 내가 바로 그 짝이었다. 그런데도, 사십이 년 동안 지켜보고 경험했으면서도, 깜빡하고 잊는다는 건 비극이다.


하숙생은 아침에 도시락 두 개를 요구한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엄마, 그래도 집 밥이 최고예요. 반찬 한 가지와 먹어도 그게 나아요, 라며. 그 말에 껌뻑 넘어가 나는 두 끼니의 도시락을 챙긴다. 반찬도 매일 조금씩 다른 것으로. 거기다 견과류와 홍삼까지 하나씩 넣어준다.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가게 준비하진 못해도 마음에 두고. 쓸데없이 친절한 하숙집 아주머니, 그게 나다.


그나마 봐줄 만한 건, 반찬투정이 일절 없다는 것. 주는 대로 먹는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김치 한 가지라도 주는 대로. 그건 그에게 있는 유일한 좋은 습관이다. 반찬 투정했다간 밥그릇 빼앗고 내쫓고 말 사람이 나다. 인간에게는 생존본능이 있다. 그 본능, 동물적 감각으로 양육자의 마음을 읽었으리라. 그때부터 생긴 습관으로 그는 반찬투정을 절대 하지 않는다. 하숙생으로 돌아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침 먹지 않은 지 십 년이 되었는데, 그 불편한 하숙생 때문에 먹는다. 하숙생은 밥이 다 되면 식탁에 자연스럽게 앉는다. 익숙하다. 당연히 차려줄 것으로 믿는 모양. “너 뭐냐? 모든 행동이 왜 이리 자연스러워?” 밥을 앞에 놓으며 툭 던졌다. 에이, 엄마두 참. “오늘부터 엄마라고 하지 마! 아주머니라고 해. 하숙집 아주머니!” 에이, 엄마두 참. 하숙생이 하는 말은 늘 그렇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에이, 엄마두 참’이다.


그래도 나는 안다. 그가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내 잔소리와 퉁바리가 더 이상 진도 나가지 못한다. 눈 흘기며 슬며시 웃을 수밖에. 세입자가 되었든 하숙생이 되었든 이 늙은 어미 품으로 날아온 나이 든 아들이므로. 또 어미의 그런 마음을 잘 아는 아들이기에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어도 미소로 넘길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잘 웃는다. 둘이 보고 웃고, 돌아서서도 웃는다. 이게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졸지에 하숙집아주머니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철저히 세끼 식사를 책임지고 빨래까지 해주는. 하숙을 해본 적은 있지만 하숙을 치는 건 처음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하숙생이 들어오기 전 난 일주일에 빨래 한두 번밖에 하지 않았다. 지금은 하루에 꼭 한 번씩 한다. 내 빨래 인생은 하숙생이 오기 전후로 갈린다. 하숙생은 하루에 수건을 네 개씩 쓴다. 아침과 저녁에 두 장씩. 옷도 자고 나면 벗고, 나갔다 오면 벗는다. 거기다 양말과 손수건까지.


어젯밤에도 하숙생은 새벽 1시가 돼서 들어왔다. 싱글벙글 웃으며. 오밤중에 뭐가 그리 좋으냐고 했더니, 그냥 좋단다. “실없기는.” 한마디 던지고 돌아서서 나도 빙긋 웃었다. 네가 웃으면 나도 웃는단다. 어디서 본 문장일까. 익숙하다. 아무튼 아들은 세입자에서 하숙생으로 승격했다. 나는 집주인에서 하숙집아주머니로 추락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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