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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ug 14. 2023

내일 아침 우리 뭐 먹어요?

아침 요리

    

아들이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묻는다. 내일 아침 우리 뭐 먹어요?라고. 처음엔 시시콜콜 다 말해줬다. 응, 내일 중심 요리는 양배추 쌈이야, 제육볶음이야, 두부부침이야, 가지나물이야, 피망 소고기볶음이야, 양송이 요리야, 김치찌개야, 계란말이야 등등. 나는 친절했다. 중심 요리에 곁들일 반찬들까지 줄줄이 엮어서 말해주었다. 심지어 도시락 반찬까지.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갈 수 있도록 안배해서. 


그 물음을 입주한 지 한 달이 넘도록 매일 한다. 그래도 친절하게 말해준다. 그 대답을 위해 나도 저녁 산책할 때 생각하고, 반찬거리를 사 들고 온다. 나는 좋은 하숙집아주머니고, 어미이며, 여자 친구 비슷한 감성까지 제공해 주는 집주인이다. 이러면 자화자찬이 되는 걸까. 사실이다. 요즘 나는 아들의 식사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있으니까. 덕분에 나도 잘 먹고 있긴 하다. 


아들이 들어오기 전엔 전혀 고려하지 않던 일들이다. 무계획이 계획이었다. 그냥 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먹었다. 배고프지 않으면 종일 먹지 않을 적도 있었다. 한번 밥을 지으면 보통 열흘 정도 먹었다. 소분해 놓고 하루에 하나씩. 지인들의 식사 제의를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갖춰지지 않은 식사는 건강을 해친다는 걸 잘 안다. 알면서도 부실하게 먹었다. 소중한 나라는 걸 모르지 않으나 그건 이론만 그렇다. 실제로 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는 건 쉽지 않다. 


한 달 이상 제대로 갖춰 먹다 보니 몸이 달라졌다. 건강해졌다. 허기지지 않으면서 속이 편하고, 잠도 잘 온다. 잘 먹는데 오히려 몸무게는 줄었다. 그것도 2kg이나. 그만큼 줄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체성분을 해보니 근육은 늘고 체지방은 줄었다. 영양소를 골고루 들어가게 식단을 짜서 먹으니 그런 것 같다. 거기에 적절하게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아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집에 들어오고 한 달 만에 5kg이 감량되었다. 밖의 음식을 전혀 먹지 않으니까 도움이 된 듯하다. 짜고 단 음식을 이제 못 먹겠단다. 거기다 건강한 다이어트 음식으로 매 끼니 먹고, 매일 만 보 정도씩 걸으니 감량 안 될 수 없다. 집에 들어오기 한 달 전부터 몸 관리를 나름대로 했단다. 그때는 거의 단식을 하면서 체중 감량을 했는데, 지금은 부족하지 않게 잘 먹으면서 살이 빠지니까 신기하단다. 두 달에 총 10kg을 감량했으니 재미있을 법도 하다. 


저녁에 들어오자마자 아들은 몸무게를 잰다. 또 아침에 일어나면 잰다. 매일 아주 조금씩 빠지고 있다. 배고프지 않으면서 몸무게가 감량된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역시 엄마 밥이 최고라면서. 마흔두 살이 스물두 살 같다. 자식은 늙어도 자식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다. 내 앞에서는 알게 모르게 말과 행동에 어리광이 들어있다. 힘이 좀 들어도 그런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등을 한 대 팡 패주면서도 웃는다. 


아들은 내가 먹는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한다. 다행이다. 그건 웬만하면 요리하지 않고 원재료를 먹는 방식이다. 식전에 먹는 것은 채소와 과일이다. 한 접시 담아 둘이 다 먹고 아침 식사를 한다. 중심이 되는 음식을 하나 만들고 나머지는 가벼운 무침이나 볶음 등이다. 반찬은 쪄서 무치는 쪽으로 한다. 웬만해선 조리거나 튀기는 음식을 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조리만 해서 원재료의 맛을 살린다. 아들이 내가 먹는 방식을 잘 따르는 게 다행스럽다. 


집에 들어와 아들이 내일 아침 무엇을 먹을지 묻는 건, 이제 애교라는 걸 안다. 사실 무엇이든 잘 먹는다. 그거 하나는 나무랄 데 없다. 아침 식탁에 앉을 때도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우와! 맛있겠다,라는 말이다. 늘 맛있겠다고 감탄사를 내뿜는다. 한편으론 안쓰럽다. 밖에 나가 사는 십 년 동안 얼마나 제대로 못 먹었으면 저럴까 싶어서다. 양배추 쌈 보고도, 제육볶음 보고도, 하다못해 가지나물 보고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월 삼십만 원에 안방까지 쓰고 있는 마흔두 살 하숙생 아들에게, 타박 한 번 못하는 건 그래서다. 


어제저녁에도 어김없이 물었다. 그것도 신발을 채 벗지 않은 채. “엄마, 내일 아침 우리 뭐 먹어요?”라고. 웃음이 터졌다.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말을 매일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아들이 힛 웃었다. “그냥요, 좋아서요.”라며. 어쩌면 꼭 먹을 게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집에 와서 어미가 해주는 밥을 먹는 그 자체가 든든해서일지도. 그것도 아니면 그냥 어리광 부리고 싶어서일지도. 또 그것도 아니면 늙어가는 어미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내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오늘 아침 현관 앞에서 내가 말했다. 저녁에 들어와 절대 내일 아침 뭐 먹느냐고 묻지 말라고. 아들이 히히 웃었다. “그럼 지금 물을게요. 내일 아침 우리 뭐 먹어요?” 아들의 말에 등을 한 대 치며 나도 웃고 말았다. 이제부터 내일 아침에 우리 뭐 먹을까 생각해 봐야겠다. 영양만점 카레, 닭볶음탕, 호박새우젓찌개, 황태콩나물국 등 어떤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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