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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ug 21. 2023

나는 이제 쿡을 시작했다

어미노릇 

 

쿡, 뭐, 힘들지 않다. 아들에게 해주는 거니까. 지 새끼 밥해주는 게 힘들다는 어미가 있다면 조금 특별한 종일지도 모른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처럼 개인의 시간과 일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는 날라리 이기적인 어미도 아들 밥해주는 게 힘들다는 생각 들지 않는다. 적어도 모성을 가진 어미이기는 하니까. 그렇다고 어렸을 적에 제대로 어미노릇하지 못한 것을 벌충이라도 해놔야 앞으로 큰 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도 아니다. 그 정도로 염치없지 않다. 


십 년 집 나가 있던 마흔두 살짜리 아들이 돌아와 함께 산 지 한 달이 넘었다. 가끔 묻는 이가 있다. 아들 밥해주기 힘들지 않으냐고. 아직까지는 힘들지 않다고 하면, 왜 쫓아내지 받아줬느냐는 이도 있다. 자기 아들 아니라고 그렇게 막말해도 되나. 그래도 그 말을 애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내 생각해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렇게 문제 있는 자식들을 다 품에 안고 살아가는 어느 소설의 어미처럼, 나도 그럴까 봐 걱정해서 하는 말일 테니까. 


적어도 우리 아들은 그 소설의 아들이나 딸 같진 않다. 빈둥대며 밥만 축내는 인간은 아니다. 월 삼십만 원짜리 하숙생이긴 하니까. 아참 한 달이 넘었는데 하숙비가 들어왔나 확인을 안 했다. 주면 받고 안 주면 이자까지 쳐서 받을 생각이다. 그렇게 말해놓았으니 언제 입금해도 할 거다. 모자지간에 일일이 따지기 불편해 확인 안 했는데. 딴은 입금이 안 됐으면 어쩌나 싶어 확인하기도 두렵다. 이렇게 배려가 많은 어미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도 나를 잘 몰랐다. 밥 하는 걸 재밌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부엌으로 간다. 전에는 서재로 갔는데. 전날 저녁에 이미 다음날 아침 식단을 생각해 두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는다. 싸르락 싸르락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반찬을 만든다. 사십 년 동안 이렇게 정성 들여 식사 준비를 한 적이 있나 싶다. 늘 뛰어다니며 사느라 대략 빨리 간단하게 했었는데. 


어느 때는 나의 내면에 이렇게 여성적인 요소들도 있었나 싶게, 집안일이 재밌을 적도 있다. 특히 요리. 이래 봬도 처음 대학에 가서 전공한 학과는 가정학과였고, 명색이 가정학사니 아예 살림에 관심이 없는 종은 아니다. 주위에서 아무도 안 믿어주지만. 은근히 바느질이나 요리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편이다. 옷을 만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수선해서 입을 정도가 되니까. 요리는 내가 한 음식이 맛없다고 한 사람을 본 적 없다. 말인즉슨 내가 살림에 아주 젬병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긴 면전에 대고 못한다, 맛없다 할, 간 큰 사람이 있을까. 내 성질을 모르면 모를까 아는 사람은 더욱. 식탁에서 쫓겨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무리 그렇더라도 먹을 만하니까 먹지, 정 못 먹겠으면 어쩌겠는가. 아무튼 내가 만든 음식을 타박한 이는 아직 없었다. 음식 솜씨 좋은 시어머님도 인정한 내 손맛이니까 거짓말 아니다. 


그렇다고 아침 식탁이 대단한가 하면 아니다. 5첩 반상 정도로 소박한 밥상. 소개하면 이러하다. 오늘 아침 예로. 양배추 당근 샐러드, 제육볶음, 찐 고추 무침, 오이지무침, 브로콜리 볶음, 이렇게. 주된 메뉴는 제육볶음이다. 거기에 갖가지 야채와 양념이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반찬 없어도 되는데, 다섯 가지 정도는 꼭 준비한다. 아침에 제육볶음을 하는 이유는 아들이 집에서 하는 한 끼 식사이기 때문이다. 두 끼는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물론 도시락도 집에서 싸간다. 


이 정도 반찬으로 식사 준비하는 것이 내겐 힘들지 않다. 대단한 음식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요리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음식을 해본 적 없다. 할 생각도 않는다. 그저 5대영양소만 골고루 들어가도록 하는 정도다. 밥 하는 게 힘들지 않다는 건 이렇게 간단하게 하기 때문일 거다. 원재료 그대로 먹는 걸 원칙으로 하고, 최소한의 조리를 하는 게 나의 쿡 cook 방식이다. 다행히 아들도 내 방식을 선호한다. 현미 섞인 잡곡밥을 좋아하고, 원재료로 먹는 것도 좋아한다. 


남들은 쿡을 놓을 때, 나는 쿡을 시작했다. 영어 cook 발음을 그대로 쓰는 건 내 의도다. 요리라고 쓰면 거창한 것 같아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이 정도가 무슨 요리인가 말이다. 쿡은 쿡쿡 참다가 나오는 웃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식사 차리는 이야기를 쓰는 게 우습다. 누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제지하는 것 같기도 해서. 우리 나이에는 외식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다. 어쨌든 남들이 쿡을 놓을 때, 나는 이제 쿡을 시작했다. 순전히 집 나갔다 돌아온 마흔두 살 아들 때문에. 


쿡을 시작하니 진정 어미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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