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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ug 23. 2023

다이어트 관리비 받을까 말까

하루의 시작과 끝 

  

아들은 일어나자마자 체중계에 올라간다. 다시 체중계가 있는 방문을 닫는다. 아마 옷을 홀라당 벗는 모양이다. 본 적은 없지만. 처음에는 자고 일어나 옷 입은 채로 재고, 두 번째는 꼭 옷을 벗고 잰다. 우스운 일이다. 옷 무게 300이나 500g을 빼면 될 일인데.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연다. “엄마! 고지가 바로 저긴데요.” 흐뭇한 표정이다. “그래? 또 내려갔어? 잘 됐다.” 우리 모자의 아침은 이렇게 몸무게로 시작한다. 


내가 해주는 밥을 먹는 우리 집 유일한 하숙생. 아직 냈는지 안 냈는지 확인도 안 하고, 냈는지 안 냈는지 말도 안 하는 그 하숙생 아들, 살이 빠졌다. 그것도 무려 8kg이나. 십여 년 동안 그렇게 빼려고 노력해도 안 되던 것이, 불과 한 달 보름 만에. 너무 급작스레 빠진 것 같아 걱정했더니, 아니란다. 어지럽지 않고 졸음이 오지도 않으며 기운 없지도 않다고. 오히려 몸이 가볍고 의욕적이며 컨디션 맑음이라니, 다행이다. 


다이어트 관리비를 내놓으라고 할까. 나는 매니저 기질이 있다. 선생 기질도 있다. 십여 년 동안 그가 버린 비용이 꽤 된다. 병원에서 관리받으며 약물치료를 한 적 있고, 한동안 피티를 받았으며, 식이요법을 했다. 좀 빠졌다. 그러다 조금 방심하면 더 몸무게가 올라갔다. 그러면 나른하고 무기력해졌으며 몸은 더 퉁퉁 붓곤 했다. 그걸 아는 나니까 생색을 내고 싶었다. 


아들을 불렀다. 뜨악한 눈으로 쳐다본다. “너 이번 달부터 다이어트 관리비까지 내.”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부르시기에 뭔가 심각한 말씀 하시나 했더니, 에그.” 찔리는 데가 있나. 그렇다면 아직도 하숙비를 입금하지 않은 걸까. 아, 물어보기 싫다. 부모자식 간에 삿되게 물질이 끼어드는 건 싫다. 곧이어 말한다. “저도 엄청 노력하고 있는 거 모르세요?” 안다, 알아. 그렇지만 지 몸 지가 관리하는 건 당연한 거지, 생색낼 게 없어 그걸 갖고 내나 싶다. 


며칠 전 퇴근할 때 어묵 파는 곳을 지나게 되었단다. 어찌나 먹고 싶은 유혹이 크던지 하나를 사서 먹었는데, 한 입 먹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렇게 맛있던 것이, 집 밥만 먹은 지 한 달이 넘으니, 맛이 이상하더라나. 입에 맞지 않았다고. 그 얘기를 듣고 난 소리를 빽 질렀다. 그렇게 한 번 유혹돼서 입에 대게 되면 무너지는 거라고. 그거 한 번 먹었다고 대단히 몸 관리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다음이 문제라고. 무엇이든 그렇지 않은가.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부터 쉬우니까. 또 유혹은 가장 연약한 부분으로 들어오는 것 아닌가. 


아들도 엄청 노력한 것이 맞다. 작업 끝나고 으레 즐기던 맥주 한 캔과 치킨, 친구들과 야식, 불규칙한 식사, 밤샘작업으로 인한 불규칙한 수면, 불규칙한 휴식. 그 모든 것과 이별했으니. “그래서 후회해? 그럼 당장 나가도 돼.” 다짜고짜 물으며 째려보았다. 틈을 주면 안 된다. 인정해 주면 아마 또 마음이 흐트러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에이, 누가 그렇대요? 제가 노력한 것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거죠.” 빙긋 웃는다. 저도 살이 쭉쭉 빠지는 게 흐뭇한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안 빠질 수 없다. 생활 비교적 규칙적이지, 영양소 골고루 들어간 식사 하지, 스트레스 없다지, 집에 들어오면 안락하게 쉴 수 있지, 작업실과 집 오가며 만보 정도 예사로 걷지, 안 빠진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적게 걸은 날이 있으면 두 정거장 전이나 후에 내려 걸어온다. 그러니 ‘엄청’ 노력했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참, 잠을 일곱 시간 자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 새벽까지 작업하던 불규칙한 습관이 없어졌으니까. 


아들은 저녁에 집에 와도 가장 먼저 몸무게를 잰다. 얼마라고 말해주고 다시 방문을 닫는다. 옷을 또 홀라당 벗고 재는 모양이다. 문을 열고 웃으며 나온다. “얼마야?” 묻는다. “내일 아침이면 오늘 아침보다 300g 정도 내려갈 것 같아요.” 그 때문에 웃었나 보다. “고지가 머지않았어요. 이제 평생 관리할 거예요.” 나름대로 목표를 정한 것 같다. “그런데 옷을 꼭 홀라당 벗고 재야 하니? 그냥 옷 무게 빼면 되잖아.” 아들은 대답 없이 빙긋 미소만. 그 이유를 안다. 조금이라도 내려간 몸무게를 보고 싶은 것이리라. 우리 모자의 저녁은 이렇게 몸무게로 마무리한다.

 

하루 시작과 끝이 몸무게로 시작해서 몸무게로 끝나는 우리 母子. 아들이 원하는 고지에 다다를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쿡을 해야 한다. 아들 몸에 좋은 음식으로. 그래도 다이어트 관리비는 받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흐뭇한 웃음을 주는 것으로 퉁 쳐야 할까. 고민이다. 그 덕에 나도 2kg 감량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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