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글쎄, 뭐 그게 세리머니일까. 그 용어도 합당한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또 아들인지 하숙생인지 세입자인지 하는 존재와 할 만한 짓인가. 모두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모르고 하는 행위도 있지 않나. 우리가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저 으레 하는 행위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걸 ‘우리들의 세리머니’라고 지칭했다. 그게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것 역시 모른다. 온통 모르는 것 천지다. 이 시대가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그 세리머니를 우리는 하루에 적어도 세 번 정도 한다. 두 번은 기본이고 세 번까지가 보통이며 어느 때는 네다섯 번도 하는 것 같다. 만 마흔두 살 아들과 만 육십다섯 살 어미가 벌이는 세리머니, 그 세리머니를 할 때마다 우리는 웃는다. 어느 땐 멋쩍을 때도 있다. 그래도 한다. 어미와 아들 사이에 못할 게 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이좋은 관계가 어미와 자식 사이라고 하지 않던가.
목회자들 중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협동으로 하면, 문제 생기는 경우가 있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머니와 아들이 협동 목회를 하면 문제 생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신기할 것 없다. 당연하다. 어머니는 자식을 뱃속에 280일 동안 품고 있었다. 그때 자식과 일체였다. 출산하여 서로 다른 개체가 되었다고 해도, 몸속에 품었던 진정한 의미의 동체였던 날을 잊지 않는다. 자식 역시 다르긴 해도 어미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리라.
다시 세리머니로 돌아가서, 아들이 아침에 출근할 때 우리는 그 세리머니를 한다. “잘 다녀와. 길조심 하고.” 마흔두 살짜리, 다 크다 못해 정수리가 듬성해지고 있는 아들에게 하는 인사치고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그래도 세상의 모든 어미들이 하는 창의적이지 못한 인사를 건넨다. 그것도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쳤으며 글을 쓰는 어미가. 우습지 않은가. 해놓고도 나는 왜 이렇게 창의적이지 못할까 싶다.
두 번째 세리머니는 아들이 집에 돌아온 직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들의 “엄마! 다녀왔어요.”라는 힘찬 부름을, 때로는 소파에서 졸다가, 서재에서 글을 쓰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듣는다. 그러면 만사 제쳐놓고 벌떡 일어난다. 어느 때는 잠결에 일어서다 비틀거리기도 한다.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온 아들과 두 번째 세리머니를 한다. 아들 몸에서 나는 땀 냄새를 감수하고. “뭐 하셨어요? 주무시지 않고요.” 아들의 말도 참으로 창의적이지 못하다. 늘 같은 말이다.
세 번째 세리머니는 할 때도 있고, 건너뛸 때도 있다. 그건 씻고 나온 아들과 잠시 거실에 앉아, 하루 있었던 일 중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상의할 것이 있으면 그 이야기를 하거나 한 후다. 아들은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잠시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별 것도 아니다. 손 아무개가 팀의 주장이 되었다든지, 골을 넣을 때 어떤 모습이 환상적이라든지, 집으로 오는 길에 어떤 일이 있었다든지, 뭐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낸 후, 각자 침실로 들어가기 전에 세리머니를 한다. 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를 나누며.
네다섯 번 하는 경우는, 힘들거나, 기쁜 일이 있거나, 그냥 그러고 싶을 때다. 아들이 갑자기 엄마, 하면서 할 때도 있고, 나 역시 아들, 하면서 할 때도 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충만해진다. 무슨 일도 다 해결될 것 같고, 어떤 산도 강도 다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등을 두드려주고 다독이다 보면, 그 자신감은 더욱 커진다. 딱 한 번 거절한 적 있다.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였다. 하지 마! 너 싫어! 했다. 아들이 입을 쭉 내밀더니 억지로 세리머니를 하고 말았다.
혹시 뽀뽀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까. 아, 그건 절대! 네버! 아니다. 우리들의 세리머니는 ‘안아주기’다. 포옹, 허그. 어디선가 ‘안아드립니다’라는 표어를 본 적 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안아주는 행사였다. 오래전 일이다. 지금 그런다면 아마 사회적 물의가 될지 모른다. 아무런 사심 없이 인간과 인간이 안아주는 정도의 교류가 그렇게 나쁜 것일까. 타인이라면 문제가 되긴 할 것 같다. 하지만 가족끼리 그것도 부모자식 간에야 못할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일 아닌가.
아들과 ‘포옹’ 같은 포옹을 처음 한 것은 군에 있을 때 면회 가서다. 면회실로 뛰어나온 아들과 내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포옹을 했다. 그리고 한참 있었다. 그 후 어쩌다 만나도 포옹한 적은 없다. 딸과 처음 포옹한 것은 딸의 결혼식 날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나 자라서도 안아주기를 잘하지 않았다. 바빠서 그랬을까. 어색해서 그랬을까. 내가 아이들 기를 때만 해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사회 문화적 분위기도 그랬고.
우리들의 세리머니, 포옹. 하루에 두세 번은 기본이고 네다섯 번까지도 하는 안아주기. 그것도 아들이 결혼하기 전까지만 할지 모른다. 유한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둔다. 오늘 아침에도 나를 포옹하고 작업실로 갔다. “잘 다녀와. 길조심 하고.” 내 인사는 여전히 창의적이지 않다. “저녁에 봬요. 손 많이 쓰지 마시고요.” 아들의 인사도 역시. 평범한 일상은 평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