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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r 19. 2024

모자(母子) 브런치 작가

모자

     

아들이 집으로 작업실을 옮긴 후, 시간 여유가 있나 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싶단다. 글 올리기 전에 먼저 브런치 작가로 인정받아야 하는 과정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한마디 더. “쉽지 않아. 적어도 두세 번 떨어질 확률이 높아. 내가 좀 봐줄까?” 아들은 아니란다. 자기가 쓸 글이므로 알아서 하겠다고. 속으로 약간 가소로웠다. 내색할 수 없지만. “그래, 그럼 알아서 해 봐.” 말은 그렇게 했으나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 신청 후, 바로 승인이 났단다. 요즘은 쉬워진 게 아닌가 싶었다. 첫 글을 올리기 전에 몇 편을 써놓았다며 그중에 한 편을 골라 올렸다. 내가 첫 구독자가 되었다. 글을 읽고 댓글도 달았다. 답글이 달리지 않아 왜 반응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웃는다. 이상한 것 같다며. 꼭 안 읽어도 된단다. 그거야 그렇지만 아들의 글에 관심 갖지 않을 순 없다. 아들은 가끔 들어와서 내 글을 읽는다.


사실 아들은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가기 전까지 받은 상을 보면, 그림과 글쓰기로 받은 게 반반이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국문과에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단다. 나도 아들이 문학을 전공하게 될 줄 알았다. 내가 공부하면서 웬만한 전공서적을 구입한 건 어차피 아들도 읽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서양화를 전공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글도 제법 썼기 때문에, 문학을 하게 될 거라고 막연하게 믿었다. 아들의 그림에 스토리가 있는 건, 가지고 있는 문학성 덕분인 듯하다.


아들은 그림만 그리는 게 아니라, 동화, 웹 소설, 에세이를 쓰고 있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대부분 그림과 관련된 에세이다. 아들의 글 읽으며 내면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글을 올리면 얼른 달려가 읽는다. 댓글을 항상 쓰진 않는다. 구독자가 열 명밖에 되지 않는데, 읽는 사람은 좀 있는 듯하다. 아들은 그렇게 올린 글을 책으로 발간할 계획이란다. 브런치 작가 몇 분을 소개하며 글도 읽어보라고 권했다.


오늘 만난 어느 작가가 말했다. 이제 글을 그만 쓰고 싶다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했더니, 아들딸이 읽지 않는 글을 쓰면 뭐 하나 싶단다. 아들딸은 안 읽어도 세상사람 중 누군가가 읽을 테니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했더니, 쓸쓸하게 웃었다. 그 마음을 잘 안다. 나는 공들여 쓰는 글인데, 가족이 읽어주지 않는다면 기운 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작가들에게 들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아들은 내 글을 읽으니까. 안 읽을 수 없다. 내 책의 표지와 삽화를 그려줘야 하니까. 원고를 몇 번 읽은 후 표지를 어떻게 그릴지 정하고 삽화를 구상한단다. 처음 산문집 낼 때 아들이 원고를 읽고 말했다. 많이 울었다고, 엄마를 잘 몰랐다고. 두 번째 산문집을 발간할 때도 그랬다. 감동적이며 엄마를 더욱 잘 알게 되었다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책을 내는 보람이 있었다. 한 사람만이라도 감동하면 되는 일이니까.


아들은 나를 잘 알고 책 표지와 삽화를 그렸다. 어느 것 하나 거슬리지 않고 흡족했다. 삽화의 표정이나 손 모양 하나도 다 마음에 들었다. 어미를 잘 아는 아들이 원고를 꼼꼼하게 몇 번이나 읽고 그렸다니 그렇지 않으랴. 다음 책에는 더 성의껏 그려주겠다고 한다. 내 평생 출간하는 책 표지와 삽화를 아들이 그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무상으로. 지금까지 키워주고 가르쳐준 것에 대한 보답이란다.


나 또한 아들의 작품을 면밀하게 감상하리라. 그림이든, 웹 소설이든, 동화든, 에세이든. 지금은 섣불리 조언하지 않고 아들의 글쓰기를 지켜보는 중이다. 가끔 창작한 동화를 메일로 보내 읽어달라고 한다. 그럴 때는 아낌없이 조언해 준다.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어휘력이나 문장력이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문장이 비문 없이 정확하다. 그건 글 쓰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요소다. 물론 짜임새 있게 엮어내는 게 부족한 경우 있지만 꾸준히 쓰는 과정을 통해 극복될 수 있으리라.  


그림 그리는 아들이 문학창작에도 관심을 갖는 게 괜찮다고 본다. 우리는 호모 노마드적 사고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 역시 다양하게 갖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서 어느 것도 제한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나이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하며 살고 싶으니까. 내가 할 일은 아들의 발걸음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일이다.


아무튼 아들은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고 있다. 이른바 우리는 ‘모자(母子) 브런치 작가’다. 어느 가정은 부녀, 부부 브런치 작가인데, 우리는 모자다. 모녀, 자매, 형제 작가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아들이 성실하게 글을 써서 목적한 대로 그림과 관련된 에세이집을 출간하기 바란다. 목표를 세우고 달리다 보면 다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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