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명숙 Jun 10. 2024

진부하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깨달음

 

목 디스크가 재발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싶었고, 이대로 산다면 차라리 그만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자 그 부정적인 생각은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정형외과와 한의원에 하루씩 다니면서 물리치료와 침을 맞았으나 도통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의야 목과 등이 아파도 그럭저럭 했지만 글을 한 자도 못 쓴다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치려고 들면 온몸이 저리고 아팠다. 고개를 숙이고 봐야 하는 독서도 물론 못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그 고통의 정도를 알 수 없으리라. 집에만 오면 안마의자와 마사지 기계를 끼고 살았다. 병원 치료 역시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글도 쓰지 않았고. 그래도 나아질 기미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목 디스크가 시작되었을 때, 딸이 권유했다. 자기가 치료받았던 병원에 가보자고. 무시했다. 어느 병원인들 다르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도 병원 있어, 굳이 그곳까지 갈 필요 있니? 내가 알아서 할게. 딸이 전화할 때마다 그렇게 답했다. 꼭 한 번만 와 보라고, 예약할 테니 오라고, 간곡히 권하는 딸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그렇게 두 달이 다 되어갔고, 나아지지 않자, 결국 딸이 권한 병원으로 갔다. 신경외과였다. 병원은 허름했는데, 환자들이 가득 차 있어서 아침 일찍 접수했어도 오후에야 겨우 진료를 받았다. 사진 찍고 문진 받고 주사를 맞았다. 그 후 물리치료. 신기한 일이었다.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 무엇에 홀린 듯했다. 아무래도 이상한 주사액이 들어간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불안한 마음과 신기한 생각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보름이 되도록 거의 통증이 없다. 예약된 날 다시 의사를 만났을 때 솔직하게 물었다. 무슨 주사를 놓았고 약을 처방했기에 이럴 수 있느냐고. 의사가 웃었다. 주사가 잘 맞은 모양이라고. 절대로 나쁜 것이나 진통제가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안심하라며. 주사약과 치료법에 대한 의사의 설명을 들으니 신뢰감이 들었다. 이제 더 치료받을 필요 없고, 목 운동과 평소 자세, 잠자는 자세를 바로 하란다. 어느 정도 일하고 나서 꼭 휴식 취하라고도 했다. 


그 후로 한 달이 되었다. 완전히 나은 건 아니지만 목의 통증과 팔 저림, 어깨 통증 등이 사라졌다. 가끔 약간 등이 아플 때 있지만 치료받기 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 생각으론 예전보다 80% 정도 나은 듯하다.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 운전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는데, 지금은 일상생활 하는 데 저촉받지 않는다. 급한 원고 작성은 망설이지 않고 한다. 


진즉 딸의 말을 들었다면 그 고생 안 했을 텐데 싶다. 음악을 전공한 딸은 피아노 때문에 목과 허리가 좋지 않다. 몇 년 전 거의 일 년 동안 고생하다, 그 병원에서 치료받고 나았단다. 자기가 나은 병원이니 틀림없다고 했지만 난 병원이 다 거기서 거기라며 무시했다. 마지막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딸의 말을 들었는데, 그렇게 효과가 있다니 놀라웠다. 


얼마 전 지인들과 이야기하다 경험담을 말하며, 자식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하니, 모두 웃었다. 이제서 그걸 아느냐며. 자기들은 벌써부터 자식들 시키는 대로 한단다. 내게 아직도 집안 주도권을 잡고 있느냐며 네로가 따로 없단다. 하, 그 일로 네로까지 들먹이는 건 너무 멀리 나간 듯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어서 웃고 말았다. 


내가 주체적이어서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내 생각을 믿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좋은 말로 하면 주도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독선적이다.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편이다. 한 가지 목표를 정하면 웬만해선 수정하지 않고 간다. 그런 의식을 이제 조금씩 바꾸고 있다. 이번 목 디스크 재발이 내게 준 교훈이다. 진부하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그 말이 맞다. 


이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밀린 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다 나빠질까 봐 조심한다. 즐겁게 강의하고 원고 쓰고 독서한다. 여행을 하고 산에도 간다.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몇 달 동안 얼마나 어두운 얼굴을 하고 다녔으면 그럴까 싶다. 몸이 아프면 아무리 노력해도 고통을 숨길 수 없다. 그래서 의사가 환자를 볼 때 얼굴빛부터 보는 것 같다. 


딸의 말 듣길 잘했다. 내가 생각하는 게 다 옳은 건 아니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이제 때론 자식 말이나 남의 말도 들을 거다. 분별해서 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더니, 내가 조금은 성숙해진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미눈물만큼, 황소걸음만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