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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Oct 25. 2024

과꽃

      

과꽃, 동요가 먼저 생각나는 꽃. 꽃밭 가득 피었던 꽃, 아니 우리 마당 가득 피었던 꽃이다. 그랬다. 나는 그해 봄에 과꽃을 꽃밭은 물론 마당귀를 뺑 돌아가며 심고 그래도 모종이 남아 마당 텃밭 앞에도 심었다. 그해 봄은, 객지에 나갔다가 건강이 나빠 돌아온 겨울이 지나고 맞은 열여덟 살 봄이었다. 그 많은 과꽃 모종을 어떻게 구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때까지 우리 집 꽃밭에는 과꽃이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분명히 어디선가 얻어온 게 틀림없었다. 


엄마는 꽃밭에 몇 포기만 심으면 되지 마당귀고 마당복판이고 온통 꽃을 심으면 어떡하느냐고 한소리 하셨으나, 나는 들은 척하지 않고 심었다. 내 고집을 아는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 객지생활에서 얻은 건 빈혈이었다. 현장에서, 길에서, 아무 데서, 자꾸 쓰러졌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들지 못한 채 산업현장에서 여물지 않은 심신을 담금질하는 게 힘에 부쳤던 모양이었다. 견디다 못해 겨울이 끝나갈 무렵 귀향했다. 


집이라고 해서 편할 게 없었다. 가장이나 다름없었던 나는 궁색한 가계와 동생들 학비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시 얼른 건강해져서 도시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 괴롭고 암담했다. 엄마와 할머니는 내 건강을 염려해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느냐며 조바심하는 나에게 더 머물기를 종용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현실은 달라서, 마을에서 좀 산다는 집 아이 둘을 가르쳐 용돈벌이를 하며 견디다 보니 봄이 되었다.


무엇에든 마음을 붙여야 해서 그랬던 걸까. 늦은 봄비가 흠뻑 내리던 날 우산을 쓰고 과꽃 모종을 심었다. 속으론 나도 울고 있었다. 꿈을 펼칠 수 없는 현실이 야속했고, 내가 짊어지고 있는 장녀의 무게가 무거워 휘청댔다. 그건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암묵적으로 지워준 아니 스스로 진 짐이었다. 물론 지금 그때로 돌아간대도 나는 그걸 스스로 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해 과꽃이 피기도 전에 나는 또 객지로 나갔다. 아직 어지럼증은 여전했고, 얼굴엔 노랑꽃이 피었지만 번민을 둘러쓰고 피하는 것보다 죽든 살든 부딪치며 해결하는 게 내 성정에 맞았다. 말리는 엄마와 할머니를 뒤로 하고 가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던 건, 한 푼이라도 벌어 살림에 보태는 길을 택하는 게, 번뇌에서 헤어나는 길이라는 걸 난 알았기 때문이다. 할 노릇하는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가을 추석이 될 때까지 도시 한 귀퉁이에 몸을 기대어 살며 속이 여물어갔다. 추석 맞아 집으로 갔을 때,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다. 내가 심은 과꽃이 피어 온 집안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꽃밭에, 마당귀에, 마당 텃밭 둘레에, 온통 짙붉은 과꽃이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동요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나 없이도 무성하게 자라 저렇듯 꽃 피운 과꽃이 그렇게 대견할 수 없었다. 


추석을 집에서 보내는 동안 마당과 꽃밭에 핀 과꽃을 실컷 보았다. 송편 만들다가도 보고, 수돗가에서 펌프질 하다가도 보고, 밥 먹다가도 보았다. 엄마는 과꽃 피는 것을 보고, 심은 사람은 못 보는데 우리만 본다고 할머니와 이야기하셨단다. 도대체 엄마들은 왜 그렇게 집 나간 자식을 그리워하는 걸까. 내가 어미가 되어보니 그건 우문 중의 우문이다. 그렇게 명절 내내 과꽃을 보고, 다시 또 객지로 나갔다. 


때론 집안을 환하게 하던 과꽃이 눈앞에 어른댔다. 꽃씨를 받아놓으라고 부탁했지만 믿을 수 없어 편지에 그 말을 써서 보내기도 했다. 비뚤비뚤하지만 서정성 가득한 엄마의 편지에 걱정마라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엄마의 편지를 읽고 또 읽다 울어 편지지가 얼룩지기도 했다. 


열아홉 살을 앞두고 설을 쇠러 집에 왔을 때 과꽃은 흔적도 없이 뽑히고 말았다. 깔끔한 엄마가 마른 대궁을 다 뽑아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꽃씨를 받아놓으셨다. 다음 해에 그 꽃씨를 심었는지 어쨌는지 기억에 없다. 그 후로 우리 집에서 과꽃을 본 적이 없으니까. 서울에서의 삶이 더 분주해지고, 꿈을 향해 더딘 발걸음을 옮기느라 집에 가지 못했고, 과꽃에 더 이상 관심을 쓰지도 못했다. 


힘들고 암담할 때마다 숨통을 틔워주고 위안을 주었던 게 어디 과꽃뿐이랴. 바람도, 구름도, 저 하늘도, 또 밤하늘의 별과 달도, 심지어 반딧불이도 내게 벗이 되고 힘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는다. 적은 월급에서 떼어, 벼르고 별러 사서 닳도록 읽었던 한 권의 책도.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어릴 적부터 가졌던 꿈이지만 자연과 교감하면서 더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과꽃, 동요가 먼저 생각나는 꽃이지만 내게는 힘든 날을 견디게 해 준 친구 같은 꽃이다. 잊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마당 가득 피었던 짙붉은 과꽃이 선연히 떠오른다. 열여덟 살 나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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