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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

by 최명숙 Jan 31. 2025

 

억새도 꽃인가. 흔히 ‘억새꽃 축제’라는 어휘를 쓰는 걸 보면, 대부분 나처럼 억새를 꽃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어떤가. 멸치도 생선이냐, 억새도 꽃이냐, 비슷한 맥락 같다. 아무튼 내게는 억새도 꽃이다. 벼과에 속하는 억새는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핀다. 갈대와 비슷하면서도 꽃은 전혀 다르다. 약간 고개를 숙인 듯 겸손한 자세로 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억새다. 꽃은 거의 은빛 도는 흰색이다. 꽃송이가 나올 적엔 보라색에 가깝다가 차츰 피면서 흰색이 된다. 그건 꽃이 아니고 줄기야,라고 하는 이도 있겠으나 그냥 꽃이라고 하자. 


내가 산책하는 개울가에도 억새와 갈대가 섞어서 핀다. 갈대는 옛 시에도 노화(蘆花)라고 지칭한 걸 보면, 일찍부터 꽃으로 인정받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예쁘기로 친다면 억새가 한수 위다. 거무죽죽한 갈대보다 은빛 도는 흰색에 가까운 억새가 훨씬 예쁘다. 더구나 고개를 살포시 숙인 모습이 얼마나 겸손해 보이는가. 아, 갈대와 억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니 이쯤에서 갈대 이야기는 마무리. 어쨌든 갈대와 억새는 비슷한 듯 자세히 보면 확연히 다르다. 


억새꽃 배동이 서기 시작하는 늦여름 산책로를 걷다 며칠 후엔 보랏빛 이삭이 쑥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맨지르르한 이삭은 신비한 느낌이 드는 보라색이다. 저녁햇살을 받아 보라색 이삭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즈음에 나는 한 번 손바닥으로 슬쩍 쓸어본다. 비단결 같은 감촉. 그러다 활짝 피면 흰색에 가까워진다. 순진무구한 색.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내 감성을 닮았다. 예민한. 


늦깎이로 시작한 대학 시절, 첫 문학기행은 ‘황토현’과 전봉준기념관을 거쳐 선운사 그리고 채석강까지 다녀오는 1박 2일 여정이었다. 다른 곳도 대부분 기억에 남았지만 억새를 보면 더욱 선연히 떠오르는 곳이 황토현이다. 뻘건 대지와 은빛 꽃송이를 흔드는 억새꽃. 그냥 슬펐다. 반봉건 반침략의 근대 민족운동 성격을 띤 동학농민운동, 그 운동의 주축이 된 농민들. 그들이 흘린 피가 땅을 저리도 붉게 물들인 것만 같았고, 그들의 영혼이 억새꽃이 되어 그 땅을 지키고 있는 듯도 했다. 


황토현에서 전봉준기념관까지는 온통 억새꽃이었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 내 뇌리에 남아 억새만 보면 그때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재현되곤 한다. 지금 그곳의 풍광은 어떻게 변했을지 알 수 없으나 차창에 스치는 억새 군락지를 보며 느꼈던 감정은 여전하다. 그래서 억새꽃에 남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의 영혼이 스며들었을까. 흔들리는 모습이 꼭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날 우리는 선운사 앞 여관에 묵었다. 마침 내 생일인 것을 안 학우들 몇이 어떻게 준비했는지 케이크에 불 붙여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렸는데, 학우들과 지도교수님은 내가 감동해서 그러는 줄 알았던 듯하다. 실은 그게 아니었다. 낮에 보았던 모습 때문이었다. 억새꽃 손짓하던 황토현의 풍광과 농민들이 흘린 피가 스며든 듯 뻘건 땅, 기념관에서 보았던 농민들의 피 묻은 저고리, 선조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오늘의 역사. 


생일파티가 끝나고 미니백일장이 즉석에서 개최되었다. 나는 황토현의 억새를 소재로 시를 지었다. 장원을 했는데, 상은 문학기행이 끝나면 대표로 기행문을 써서 교지에 싣는 것이었다. 상금도 상품도 없고 글을 써야 하는 수고로움이 생겼다. 그래도 불만스럽지 않았다. 누군가가 기행문을 써야 한다면 내가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만큼 첫 문학기행은 억새 때문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 후 억새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꼭 한 번 더 보고, 잠시 머무르고, 황토현에서 피 흘린 동학군을 떠올린다.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이, 앞서 의를 위해 희생한, 당연한 권리를 위해 투쟁한, 선조들 덕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 또한 의로움을 위해서 비겁해선 안 된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래도 날마다 비겁하고 너덜너덜 남루해진 옷자락 같은 삶이 아니던가. 그래서 억새를 볼 때, 나는 성찰하기도 한다. 


억새는 꽃이다. 여느 꽃보다 더 겸손하고, 더 순수하고, 영혼이 깃든 듯 보이는 꽃이다. 나른해지고 세파에 휩쓸릴 것 같은 나를 그 연약한 몸으로 일으켜 세워주는 강인한 꽃이다. 세찬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깊이 몸을 숙였다 일어나는 지혜로운 꽃이다. 세상 사는 지혜와 마음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주는 스승 같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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