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커피나무의 분투

나무는 열매. 나는 눈물

몇 해 전 바깥양반이 커피나무가 심긴 커다란 화분을 들고 왔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화분 엉덩이들을 요리조리 비틀어 옮겨놓고  해가 가장  드는 명당자리를  커피나무를 앉혔다.

우리도 흡족했고 저도 마음에 드는 눈치다.


부부의 분에 넘치는 관심 때문인지

커피나무는 진한 향기 내뿜으며 하얗고 자그마한 꽃을 피웠다.

그 자리마다 커피콩이 매달릴걸 생각하니 몹시도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기후가 이렇게 다르니 열매가 맺기는 하겠나 꽃만 피고 말겠지 했다. 

그러나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무는 꽃 진 자리마다 작고 동글동글한 초록 열매를 등처럼 매달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조금씩  열매를 키워나갔다.

세상의 시간이 아니라 저 만의 시간을 품고 있는 듯 그렇게 천천히 여름을 보냈고 가을이 다 가도록 초록 열매는 익을 기미가  없었다


어쨌거나 크로노스적  시간은 계속되었고 결국 열매를 익히지도, 떨구지도 못한 상태로   겨울이 왔다.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으니 포기를 한 건지, 무슨 꿍꿍이가 따로 있는 건지 별다른 내색 없이 초록열매를 마냥 붙잡고만 있었다.


제 조상이 살던 환경에 비해  일조량도  턱없이 부족한데 동장군까지 찾아왔으니 제대로 익기는 글렀다 싶었다.  짠하고 보기 딱하여 거실로 들였다.


그런데... 생명이란 참으로 질긴 거더라.  

커피나무는 한겨울 내내  초록열매를  꽉... 붙잡고 있었고, 그  눈물겨움 속에 콩알만 하던 열매가 땅콩알 만하게 커졌고 얼마 안 있어  새 봄이 왔다.


 달린 것이라면  꽂을 피우는 시절이 도래했으니 이제라도 정신 수습하여 해묵은 열매를 떨궈내향기 대동하여 제 꽃을 피우려나 했다.

그러나 온천지가 꽃으로 번져가던 그 봄에도 커피나무는 초록열매만을 지키며 자신의 시간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렇게 은근하면서도 처절한 분투 덕분으로  여름볓이 좋은 어느 !  드디어 . 은. 빛. 을 띠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가 열댓 알 매달려 있던 모든 열매들이 빠알갛게 익었다.


나는 그  고요한 장엄 속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 미숙한 판단으로 그만두었거나, 때려쳤거나,  외면했던 오만 다섯 가지 생각들이 서로 부대끼며 아우성쳐댔다.

그중에 몇 놈들은 망막을 뚫고 나와 아래로 수직 하강하였다.





작가의 이전글 이 징글징글 한 고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