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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민 Jul 08. 2021

<비포선셋>, 순간이 영원하도록

*스포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읽어주세요!*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비엔나가 아닌 파리의 텅 빈 공간들을 보여주며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엔딩과 맞닿아 있다. 이 공간들은 두 사람에 의해 채워질 것이며, 또다시 비게 될 것을 암시한다. 이번엔 해가 지기 전까지의 시간이라니! 


9년의 시간이 지났고, 그들은 다시 만났다. 맞담배도 피고, 낯 뜨거운 이야기도 내숭 떨지 않으면서 하는 나이가 되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모습을 계속해서 함께 딥 포커스로 잡으며 롱테이크를 이어간다. 그들은 9년 전처럼 시도 때도 없이 개똥철학을 늘어놓으며 주어진 짧은 시간을 보낸다. 다가올 이 만남의 끝이 두렵기 때문에, 남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미루는 것이다. 



여자는 정말 그 겨울 비엔나에 가지 않았던 걸까? 관객은 알 수 없지만, 두 남녀가 9년 전의 강렬한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여자는 사랑의 아픔이 두려워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하며, 남자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와도 맞닿아 있다. 인간은 하염없이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흘러 보낸다. 비엔나에서의 그 겨울, 서로 만났다면 이 이야기는 더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링글레이터는 이번 두 번째 이야기에서 헤어짐을 그리지 않는다. 줄리 델피의 춤과 에단 호크의 미소와 함께 엔딩크레딧은 올라간다. 



감독은 예정된 이별 앞의 찰나의 행복을 두 남녀에게 남겨두고 싶었던 것 같다. 

먹먹하게 행복한, 영화 속 그 순간에 그들을 내버려 두는 것이다. 

과거를 그리워할,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는 그 순간에. 

그것이 바로, '영화' 만이 그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안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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