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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민 Jul 08. 2021

<비포 미드나잇>,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Tomorrow is another day

*스포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읽어주세요!*


18년이 흐르면 배우가, 감독이, 나아가 영화가 변한다. 변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 변주에 실패해 매너리즘에 빠진, 트릴로지의 아쉬운 최종작은 숱하게 봐왔다. 로맨틱 그 자체였던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 관문에서, 링클레이터는 대담하게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둘은 아이를 둔 부부가 되었다. 감독은 이전 두 작품에서 보여준 로맨스를 대폭 줄이고, 현실적 갈등을 부각하며 삶과 시간의 흐름을 오롯이 담아냈다.



여전히 엄청난 길이의 롱테이크는 관객으로 하여금 둘 사이의 대화 내용에만 집중하게 한다. 호텔의 다툼 씬에서 우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상처 받고, 때론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자연스레 부부싸움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엔딩의 장소, 바닷가 카페에 와있다.


미드나잇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전 두 작품과 달리 새로운 인물들이 영화에 깊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갓 사랑에 빠진 20대와 40대 중년 부부, 배우자를 잃은 90대 노년까지. 마치 선라이즈, 선셋, 미드나잇에 대응시킨 듯 한 이 인물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인생 전체를 가늠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서로가 아닌 각자가 각자를 챙겼지.
우린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어. 그래서 더 좋았지.


부인을 잃은 노년 할아버지의 대사다. 우리는 때론 비포 시리즈 초기의 넘쳐흐르던 낭만에 목매지만,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우연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인간의 나약하고도 위대한 감정 아니던가.  <비포 미드나잇>에서는 사랑의 낭만이 아닌, 사랑의 유한함을 지독하게 녹여내며 또다시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다시 엔딩 바닷가 카페로 돌아가 보자. 격한 말다툼 뒤 서로는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역설적이게 <비포 선라이즈>의 설렘 가득했던, 눈을 마주치지 못했던 그들의 첫 만남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과 처음을 이어놓은 유려한 연출은 이 영화의 주제와도 닿아 있다.


선라이즈, 선셋, 미드나잇. 해가 뜨고 지고 새벽이 지나가고 나면 또다시 해는 뜬다.

우리의 삶은 빛과 어둠, 만남과 이별, 싸움과 화해의 쳇바퀴 속에서 이어가는 유한한 변주다.

비포 시리즈는 스크린 밖에서, 관객들의 삶에 의해 이어질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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