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있음※
몇 장의 여행 사진들과 남자의 담담한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단순히 여러 장의 사진들을 나열한다는 오프닝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때가 정말 그립다.’ 남자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꽃과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산책시간만이 삶의 낭만인 조제는 다리가 불구인 장애인이다. 그녀는 책으로 세상을 느끼고 알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자가 나타난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냥 연애도 힘든데, 장애인과의 사랑이라니. 정당하게 받아들여지는 갑 을 관계에서의 연애다. 하루 종일 조제를 업고 다녀야 하고, 가고 싶은 대로 가줘야 한다. 왜? 그에겐 당연한 것이 그녀에겐 특별하기 때문이다.
"휠체어 하나 사자."
"싫어. 네가 업어주면 되잖아."
둘의 연애는 이런 식이다.
"넌 안 젖고 나만 젖었잖아."
바다에 가서도 둘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장소를 완벽히 공유하진 못한다. 분명히 사랑한다. 하지만, "지쳤어 형?"이라는 동생의 물음에 주인공은 대답하지 못한다.
남자는 여자를 내버려 두고 도망친다. 그는 운다. 하지만 그를 삿대질 할 수 있는 관객은 많지 않다.
여자는 전보다 훨씬 크기가 작아진 생선을 홀로 굽는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끝이다.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 모두 남겨진 존재들이다. 책 속에, 우리 속에, 수족관 속에. 아무것도 없이 집 속에 갇혀 있던 그녀에게 남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책과 우리와 수족관을 벗어나 진짜 세상을 잠깐이나마 경험한다. 그리고 남자가 떠나면, 다시 컴컴한 바닷속에서 떠다닐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그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아, 원랜 정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사실 여주인공의 이름은 쿠미코다. 조제는 쿠미코가 읽는 사강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 소설 속에서 조제는 이별한다. 쿠미코가 자신을 조제라고 소개했던 것은, 시작부터 그녀는 이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어질 줄 알았지만 사랑했다. 쿨하게 선물과 함께 남자를 떠나보내는 척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쿠미코는 소설의 일부를 읽어준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우리는 또다시 고독해지고. 그래도 마찬가지야. 또다시 흘러가 버린 일 년의 세월만 남아 있을 뿐.’
우리는 그 세월들을 추억할 것이다. 오프닝의 남자처럼.
그리고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엔딩의 여자처럼.
이 이야기에서는 <노팅힐> 같은 기적의 사랑을, <노트북> 같은 불변의 사랑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파도를 떠나 홀로 남겨진 조개껍데기는 해변가에서 반짝일 수 있듯, 이 영화에는 현실적인 잔잔함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더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