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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민 Aug 31. 2021

<칼리토>, Unforgiven.

운명은 그를 어디로 이끄는가

/* <칼리토>와 <대부 3>에 대한 스포일러가 섞여있습니다! */



칼리토(알 파치노 분)는 총알 두 방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진다. 눈물짓는 애인의 얼굴 클로즈업. 피를 흘리는 그의 머리 옆으로 영화의 제목 – Carlito’s Way – 이 펼쳐진다. 칼리토의 인생길을 죽음과 병치시키는 이 오프닝은 처음부터 모든 결말을 알리고 있다. 스포일러를 혐오하는 관객들이기에, 감독의 배짱 있는 이 선택에는 물음표가 따른다. 도대체 왜? 의문과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마피아로 이름을 날리던 칼리토는 30년 형을 선고받지만, 운 좋게 검사의 불법 수사가 드러나면서 5년만 옥살이를 하고 출소한다. 출소하는 그의 다짐은, 마피아 생활을 청산하는 것. 그리고 바하마로 떠나 평범한 자동차 임대인이 되는 것. 그는 진짜 교화된 게 맞을까? 소박한 꿈을 진지하게 늘어놓는 칼리토에게 돌아오는 것은 의심과 비웃음뿐이지만, 그는 진지하다.


말하자면, 그는 영혼을 구원받으려는 자다. 그런 의미에서 칼리토는,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 마피아 사업에서 떠나려 애쓰는 <대부 3>의 마이클 콜레오네와 닿아있다. 하지만 악에서 선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종교가 수천 년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 이리. 구원을 갈망하는 칼리토에겐 역시나 많은 역경이 기다린다. 자신이 빚진 변호사는 완전히 타락해 칼리토를 끊임없이 뒷골목으로 끌어들인다. 잔챙이 마피아 메니는 과거의 그와 초라해진 현재를 비교하며 자존감을 벅벅 긁어댄다.


그는 정말 달라진 걸까?


‘이젠 필요해도 사람을 죽이진 않아.
난 정말 달라졌어.
바하마로 떠나기 위한 칠만 오천 불이 필요할 뿐이야’

거리가 지켜보지만, 칼리토는 죽도록 깝죽대던 메니를 살려 보낸다. 죽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5 전이라면 당연히 죽였을 테지만, 그는  이상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애인 게일 바하마에 가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운명은, 구원받으려는 자의 투쟁에 어떤 결말을 선사하는가.

그가 달라졌다한들 그의 과거는 달라지지 않는다. 범죄는 그가 자초하지 않았지만 늘 그의 뒤를 따라다닌다. 과거는 끊임없이 범죄의 본능을 일깨우고 미래는 타락을 요구하는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락한 변호사를 돕기로 한 그의 선택은 미래를 박살 낸다. 순식간에 그는 살인의 표적이 되었고, 전설의 기차 추격신이 이어진다. 영화의 마지막 15분, 상황의 긴박감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탁월한 롱테이크 촬영은 눈 깜짝할 사이에 관객을 이야기의 끝으로 데려간다.


‘호의는 총알보다 더 빨리 사람을 죽여.’

극 중 이 대사를 왜 썼는지 증명이라도 하듯, 감독은 칼리토가 살려 돌려보낸 메니로 하여금 도리어 그의 목숨을 앗아가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엔딩과 동일했던 오프닝을 다시금 되짚는다. 오프닝의 스포일러는 칼리토의 죽음을 미리 보여줌으로써, 결말보다 그 과정에 집중하게 하는 영화적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정교한 구성에서, 감독은 관객이 두 시간 동안 칼리토를 열렬히 지지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후렴에서 다시 보여줌으로써 안타까움이 아닌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유사한 인물 서사를 그렸던 <대부> 트릴로지의 마지막은 어땠는가. 영화사에 길이 기억될  파치노의 오열 씬에서, 딸의 죽음과 함께 그에게 허락된 것은 사랑했던 이들의 경멸의 눈빛이었다. 그의 죽음 곁은  한 마리뿐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반면 죽어가는 칼리토의 최후를 함께하는 여인과 아들의 존재는, 두 인물 서사를 다시 한번 대조시킨다. 동일한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대부>에서의 허무함이 아닌 숭고함이 느껴지는 데에는, 미리 죽음을 보여    죽음까지의 치열한 과정을 상세히 그린 플롯의 힘이 크다.




그렇다. 바위건 돌맹이건 물에 가라앉긴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타락과 회개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 삶의 쳇바퀴 아니던가. 칼리토에게 돌을 던질  있는  없는 관객은, 없다.


미안해, 내 사랑.
난 최선을 다했어. 정말이야.
지치는 밤이야.
난 지쳤어 게일, 너무도 지쳤어.


칼리토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바하마의 모습과 함께 엔딩크레딧은 올라간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악 <You are so beautiful>.

감독은 이 아름다운 진혼곡을 통해 통해 칼리토의 명복을 빌어준다.



끝없이 추락함을 알면서도 구원받고자 하는 인간의 투쟁은 얼마나 허무하고도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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