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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민 Feb 06. 2021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오늘을 살고 싶다

※ 스포 있습니다 ※


주인공(코이치)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화산이 언제 분출할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왜 화산 근처에 사는지. 학교는 왜 언덕 위에 지어서 올라가기 힘들게 하는지. 아빠가 외쳐대는 세계란 도대체 무엇인지.


사실 코이치의 질문은 이번 작품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를 내포한다. 철저히 어른들의 관점에서, 아이들을 이해하는 척하는 오만의 영화들과 달리, 고레에다의 손길은 섬세하다. 겸허와 수긍의 태도로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실제로 이 세계에서 그려지는 어른들은, 과거에 얽매이는 자들 -사실 그것이 가장 어른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투성이다.  코이치의 엄마는 동창회를 다녀와서 향수와 후회를 동시에 느낀다. 핑크색 가루칸 떡을 도전하지 못하는 할아버지 또한 전통이라는 족쇄에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 20대로 돌아가는 것이 소원인, 소녀의 엄마는 영화 내내 정적인 공간에 머무른다.


반면 기차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이루어진다 믿는 아이들. 그들의 공간은 다르다. 기적의 장소인 역으로 가기 위해 그들은 돈을 모으고,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기차를 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소원을 빈다. 숨소리와 땀냄새 가득한 그들의 동적인 공간은 어른들의 그것과 대비될 수밖에 없다. 그림을 잘 그리게 되는 것.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되는 것. 아빠가 빠칭코에 가지 않게 되는 것… 아이들의 소원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미래지향적이란 점에서, 되돌리고파 하는 어른들과 또 한 번 대비된다.

그렇다면 그 기적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두 기차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잠시 시공간은 정지된다. 극한의 카타르시스의 순간에, 감독은 관객이 그것을 느끼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기적을 기대하는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은 역으로 사소한 일상이다. 길거리의 코스모스 꽃,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줍던 동전, 할아버지가 만들던 떡, 집에서 먹던 밥… 그들이 기적을 이루기 위해 발걸음을 뜨게 했던, 인생의 지극히 사소한 순간들이 나열된다.

 

픽사가 만든 <소울>처럼 ‘모든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직언은 없지만, 지나가는 일상의 화면들이 던지는 언어의 깊이는 훨씬 짙다.


그리고 기차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동심과 순수에 대한 예찬을 다룬 희망찬 영화가 아니다. 죽은 강아지 마블을 살려내거나, 기적적으로 가족이 재회하는 영화적 만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세월의 풍파를 맞고 초심을 잃은 어른들을 비판하는 영화 또한 아니다. 양호선생님과 할아버지의 도움 없이는 아이들의 여정은 시작될 수 없었으며, 따스한 노부부의 정이 없이는 끝맺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삶에서 후회와 향수는 끝없이 반복된다. 선뜻 도전하기도 힘들다. 기적이란 이루어 지기 힘듦을 아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 너머에 달리는 아이들도 있다. 열심히 동전을 줍고 소중한 인형을 팔면서 돈을 모으고, 기차를 보며 헉헉대며 뛴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베풂을 받고, 역으로 영감을 주기도 하며, 섞여 살아간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듯한 이 영화는, 아이들이 소원을 외친 이후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감독의 포커스는 기적 그 자체가 아닌, 기적을 대하는 태도. 달리고 고함치는 아이들과 그들을 돕는 어른들에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티 묻지 않은 순수함을 그리워하기보다는, 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기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오늘을 살고 싶게 한다.



세계가 뭔데? 코이치의 질문에 아빠는 네가 더 자라면 알게 될 거라 얼버무리지만, 그 또한 정답을 알지 못한다. 영화 내내 유지되던 어른과 아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는, 그 막바지에서 어느새 허물어져 있다. 어른이건 아이건, 오프닝의 독백처럼, 이 세상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참 많다. 기적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힘을 내야 하는 것은 기적이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고레에다가 주목한 것은 기적이 아닌, 바람에 날리는 길가의 코스모스와 그것을 보며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오늘은 재가 안 쌓이겠어.


어느새 엔딩에서 코이치는 훌쩍 성장해 있다.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나는 왜, 기차가 스쳐 지나갈 때 목이 터져라 소원을 외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를 모르겠다. 카메라는 하염없이 달리고 달리는 아이들의 뒤를 쫓을 뿐이지만, 그 뒷모습들이 왜 내 목을 메이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아기자기한 가족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이 콩닥 인다. 감정이 벅차오르고 오늘을 살아 내고 싶다.


이 영화의 원제는 <I Wish>다. 목적어가 없다. 영화는 기적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을 쫓을 동력을 선사할 뿐.


영화라는 매체가 닿을 수 있는 깊이에 오늘도 나는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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