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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민 Feb 17. 2021

<원더풀 라이프>, 우리는 이 영화를 완성시켜야 한다.

'이야기' 보다 '인간'이 중요하다

※스포 있음!※


우리의 삶과 영화는 얼마나 닿아 있을까.


영화의 세계는 온전히 감독의 세계다.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장면만 보여주고, 관객은 그의 의지가 개입된, 가공된 세계를 관음 한다. 물리적으로 봐도 영화의 세계와 관객의 세계는 스크린을 통해 완벽히 분리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영화를 보는가.

때때로 훌륭한 영화는, 나아가 탁월한 감독은 철저히 분리된 그 두 세계를 봉합해낸다.

<원더풀 라이프>가 그렇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관객이 영화관을 나올 때 비로서야 시작된다. 그의 정교한 바금질은, 시공간을 초월해 관객과 영화 둘 만의 신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죽기 직전, 인생에서 가져갈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해야 한다. 그 순간을 제외한 모든 것은 삭제되고, 오롯이 그 기억만을 품고 죽을 수 있다. 당신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


감독이 창조해낸 이 장중한 세계관을 맞닥뜨리는 순간, 작위스러움에 눈살 찌푸리는 이도 있겠지만-(내가 그랬다)- 어느새 관객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저만치 앞서가 있음을 깨닫고 우리는 허겁지겁 영화 속 인물들의 선택을 살펴본다.


늦여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바람을 맞던 기억, 대나무 숲에서 어른들이 해주던 주먹밥을 먹던 기억 … 다양한 각자의 순간들이 언급된다. 관객이 오롯이 '자기 자신'의 순간을 떠올리려 애쓸 때, 영화는 '다른 이'들의 순간을 묵묵히 나열함으로써 우리의 태도를 무마시킨다. 비로서야 관객은, 행복이라는 그 웅장하고도 모호한 단어의 베일 속을 어렴풋이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물론, 행복의 순간을 선택하길 거부하는 이도 있다. 그는 과거의 기억이 아닌, 꿈꾸던 미래를 다룰 순 없냐고 불만을 표한다. 없는 기억을 만들어 내는 사람도 있다. 기억은 기록과 달리 가변적이다. (그것은 놀란이 <메멘토>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나아가 행복이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질문할 뿐이다.




결국 모든 판단은 관객에게 유보된다. 단 하나의 기억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마지막 기억을 선택한 이들은 그 선택으로 행복했을까? 그들은 영화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적막 속 무의 상태- 그것은 어쩌면 죽음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로 사라져 그 마지막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진다.


그렇다면 그 암흑의 밖에서 모든 걸 지켜보는 관객은, 덜 죽은 자 들을 주목하게 된다.

사실 영화의 시작부터 감독의 시선은 확고했다. 오프닝의 발 뒤꿈치부터 엔딩까지, 카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겨진 자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시오리(극 중 소녀)가 로케이션 헌팅을 위해 현세를 쓸쓸히 바라보는 모습, 잊었는지도 모를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홀로 목욕하는 모습. 지루할지도 모르는 이 씬들을 지긋이 이어가는 이유는  소녀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바로 우리, 관객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선택할 단 하나의 순간이 없어 전전긍긍대는 자들, 아직 죽지 않은, 남겨진 자들.


어느 순간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원더풀 라이프> 일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관객에겐 살아갈 '오늘'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이 싫으면 미친 개처럼 날뛰거나, 욕하거나, 신을 저주해도 되지만,
마지막 순간엔 받아들여야 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데이빗 핀처-


저들과 달리 당신에게는 아직 마지막이 오지 않았다. 오롯이 이 순간을 살아 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인 오늘이, 적어도 당신에게는 허락된 것이다.


하지만 제목처럼 인생이 찬란할 수 있을지는 -고레에다의 다음 영화 원제처럼- 아무도 모른다.

여백 가득한 이 영화에서 나머지를 채우는 것, 영화를 완성시키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오늘을 살아냄으로써, 여백을 채워내야 한다.

이 영화를 완성시켜 내야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봄이라는 계절은 나에게 향수 가득한 추억인가, 설렘 넘치는 미래인가?


<원더풀 라이프> 끝에서, 스스로의 영화를 찍기 시작한  자신을 발견했다.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당신이 완성시킨 이 영화는 어떤 모습일지.

당신의 삶과 영화는 얼마나 닿아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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