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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과 컨설턴트 사이, 적당한 온도는 몇 도일까요?

선을 지키는 전문성, 마음을 얻는 거리감에 대하여

by 심야서점

컨설팅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깊이 깨달은 날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데이터와 정교한 로직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일을 완성하는 것은 고객과 컨설턴트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관계의 공기'이기 때문입니다.


“상무님, 시간 되시면 저 좀 잠깐 뵐 수 있을까요?”


고객사로부터 이런 호출을 받으면 저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이렇게 따로 부르는 경우에는 좋은 이야기보다는 컨설팅 과정에 대한 조심스러운 불만이나 어려운 부탁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열에 아홉이기 때문이지요.


몇 년 전 그날도 그랬습니다. 불안감을 감추며 나간 자리에서 마주한 고객의 첫 마디는 꽤 뼈아팠습니다.


“상무님, 그분은 컨설턴트 같지가 않아요. 너무 소극적이라고 할까요?”


현업 담당자와 관계도 좋고 성실했던 A 컨설턴트. 하지만 고객의 시선은 냉정했습니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모신 전문가가 자신들과 똑같이 고민하고,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모습에서 실망을 느낀 것이죠. 사람은 좋으나 전문가로서의 줏대가 보이지 않는 모습은 프로의 세계에서 치명적인 결점이 되기도 합니다.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파트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엔 정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실력 있고 의욕 넘치기로 소문난 B 컨설턴트의 건이었습니다.


“자꾸 현업을 윽박지르는 듯해서 못 해먹겠다고 합니다. 이게 해결 안 되면 교체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현업 담당자를 가르치려 들고, 모르는 부분을 다그치는 공격적인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의욕이 과해 ‘전문가’라는 권위로 상대를 눌러버린 것이지요. 배울 점은 많지만 함께 일하기엔 숨이 막힌다는 고객의 호소는 앞선 사례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너무 가까우면 데이고, 너무 멀면 추운 ‘난로’처럼


비슷한 시기에 겪은 이 두 사건을 보며 저는 관계의 본질을 생각했습니다. 흔히 컨설턴트와 고객의 관계를 ‘불가원 불가근(不可遠 不可近)’이라 표현합니다.


마치 겨울철의 난로와 같습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뜨거운 불길에 데어 상처를 입고, 반대로 너무 멀어지면 온기를 느낄 수 없어 냉랭해집니다.


너무 가까울 때 (소극적 태도): 고객의 비위를 맞추느라 쓴소리를 하지 못하고, 결국 컨설턴트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을 잃어버립니다. 온기에 취해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잊게 되는 것이죠.

너무 멀 때 (공격적 태도): 자기 주장만 강요하며 고객을 무시하는 인상을 줍니다. 차가운 이성만 존재할 뿐, 정서적 유대가 없어 작은 마찰에도 관계는 쉽게 깨져버립니다.


결국, 균형에 대한 고민입니다


컨설턴트는 고객을 코칭하여 문제 해결로 이끄는 ‘리더’인 동시에, 그들의 신뢰를 얻어 곁을 지키는 ‘파트너’여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역할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뒤로 물러나 고객이 시키는 것만 하면 ‘전문가답지 않다’는 비판을 받게 되고, 반대로 너무 공격적으로 자기 주장을 강요하면 ‘고객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도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포지션에서, 어떤 자세로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딛고 있는 이 위치는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거리인가요, 아니면 불편함을 주는 거리인가요.


비단 컨설팅뿐만 아니라,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비즈니스 관계가 사실은 이 선 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프로의 품격은 결국 그 적절한 ‘온도’와 ‘거리’를 찾아가는 끊임없는 고민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컨설팅 #인간관계 #직장생활 #커뮤니케이션 #적당한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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