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유혹과 싸우는 일에 대하여
최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동료 컨설턴트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쓴소리를 삼킬 수가 없더군요.
그가 가져온 결과물 때문이었습니다. 고객사가 앞으로 사용할 표준을 정의하는 중요한 과업이었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니 기존의 데이터와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더 심각한 건, 그 결과물에 이렇다 할 방향성이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결국 '너무 쉽게 가려고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복잡한 해명을 듣긴 했지만,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컨설턴트를 '파트너'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 단어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균형 감각이 요구됩니다.
컨설턴트는 고객과 보폭을 맞춰 걷는 '동반자'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나아가야 할 곳을 가리키는 '가늠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너무 앞서 나가서 고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려가 버려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고객의 뒤꽁무니만 쫓아가서도 안 됩니다.
사실 이 균형을 잡는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경험이 풍부해도, 고객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나의 제안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현실을 모르는 허황된 소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컨설턴트가 가장 경계해야 할 피드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객의 현황을 현미경처럼 정밀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그들의 아픈 곳이 어디인지, 무엇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죠.
하지만, '고객의 현황을 맞추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만약 고객의 요구사항을 듣고, 그들의 입맛에 딱 맞는 해결책만 정리해서 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면 어떨까요? 그건 굳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외부 전문가를 부를 일이 아닐 겁니다.
컨설턴트의 시선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단단한 땅을 두 발로 딛고 서 있되, 눈은 반드시 하늘(미래)을 바라봐야 합니다.
단기적으로 고객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해결책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건 미봉책일 뿐입니다. 컨설턴트라면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 고객이 지금 당장은 조금 버겁더라도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필연적으로 이 과정에서는 '저항'이 발생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를 싫어하고, 익숙한 관성대로 살고 싶어 하니까요. "원래 그래왔다"는 말로 기존 방식을 고수하려는 그 단단한 벽을 허물고 설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동료에게 화가 났던 지점은 바로 여기였습니다. 그는 저항이 싫어서, 변화를 관리하는 과정이 고달파서, '기존 방식과 다를 바 없는 쉬운 길'을 택했습니다.
"고객이 원하니까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동안 계속 이렇게 해왔으니까요."
이런 핑계 뒤에 숨어, 적당히 타협하고 그저 그런 해결책에 만족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컨설턴트로서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입니다. 이상만을 쫓으면 현실 감각 없다는 비난을 듣고, 현실에만 안주하면 존재 가치가 없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합니다. 고객의 보폭에 맞추어 함께 걷되, 끝내 그들을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는 일.
그것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욕을 먹을 수도 있고, 격렬한 반대에 부딪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여전히 컨설턴트를 필요로 하는 것 아닐까요?
오늘도 쉬운 길과 옳은 길 사이에서 고민하는 당신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시선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변화는 늘 저항을 동반합니다. 저항 없는 프로젝트는 편안할지 몰라도, 혁신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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