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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가 없는 디자인은 공허하다

컨설턴트의 무기는 화려한 장표가 아니라 '단단한 생각'이다

by 심야서점

처음 컨설턴트라는 직함을 달고 일을 시작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고객에게 장표 한 장을 두고 수많은 챌린지(Challenge)를 받아야 했습니다. 나름대로 디자인에 공을 들이고 밤새워 만들었기에 자신감이 있었지만, 고객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제 눈앞에서 공들인 장표가 가차 없이 “Delete” 당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그저 억울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고객이 지적했던 건 단순히 '디자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요.


연차가 쌓이고 시야가 넓어지니, 과거의 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과연 그때 나는 그 장표에 무엇을 담고 싶었던 걸까?"


예쁜 껍데기보다는 단단한 알맹이를


신입 시절의 저는 장표를 '예쁘게' 만드는 것에만 몰두했습니다. 장표가 반드시 담아야 할 메시지는 뒷전이었고, 당연히 논리적인 구조도 허술했습니다. 결과물은 겉만 번지르르한, 알맹이 없는 이미지 파일에 불과했겠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화려한 파워포인트(PPT)보다는 투박한 엑셀(Excel)이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에게 파워포인트는 단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비유하자면 엑셀에 담을 수 있는 로직과 데이터의 깊이가 100이라면, 파워포인트는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30만을 선별하고 요약하여 재구성한 결과물입니다. 나머지 70은 엑셀 시트 어딘가, 그리고 제 머릿속에 논리로 남아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보가 생략되거나 왜곡될 우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 컨설턴트들에게 이렇게 조언하곤 합니다.


"장표 디자인에 힘을 쏟기 전에, 먼저 정보를 파악하고 분석하세요. 엑셀이나 워드로 생각을 정리해 논리를 단단히 한 후에, 파워포인트를 켜도 늦지 않습니다."

컨설턴트는 '장표 기술자'가 아닙니다


흔히 컨설턴트라고 하면 '장표를 기가 막히게 만드는 사람',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좋은 컨설턴트의 정의가 곧 '장표를 잘 만드는 사람'은 아닙니다.


컨설턴트에게 장표란 자신이 수행한 분석, 주장, 그리고 향후 계획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그릇일 뿐입니다. 실제로 업계에는 장표 만드는 기술은 조금 투박해도, 프로젝트 현장에서 발군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실력 있는 컨설턴트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빈 껍데기뿐인 화려한 장표로 잠시 눈길을 끌 수는 있어도, 결국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프로젝트는 실패한 것입니다.


컨설턴트의 본질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입니다. 장표는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라, 보조적인 수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디자인이 날개가 되어주는 순간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그렇다면 장표 디자인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컨설턴트는 결국 결과물로 증명하고 고객을 설득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사이트라도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이때 장표는 내 생각을 '있어 보이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하지만 순서가 중요합니다. 첫째는 명확한 메시지이고, 둘째는 논리적인 구조화이며, 보기 좋은 디자인은 맨 마지막 단계입니다.


내용이 부실한데 디자인만 좋은 장표는 공허하지만, 탄탄한 논리와 구조 위에 입혀진 뛰어난 디자인은 컨설턴트의 결과물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입니다. 장표의 디자인보다는 메시지가, 개별 메시지보다는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는 '구조'가 먼저입니다. 그 단단한 뼈대 위에 디자인이라는 옷을 입혔을 때, 비로소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장표'가 탄생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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