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 온 미국, 여름

프롤로그

by Zepline

치열한 접전 전 잠시 숨 고르기 같은 거였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스스로 생각해도 많이 변했다. 언젠가부터 ‘열심히’와 같은 단어에 물려 ‘쉬엄쉬엄’ 사는 맛을 알았다. 좋게 말하면 용기 있어졌고, 다르게 말하면 무모해졌다. 그 때문에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에 도착한 내가 다시 또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이곳으로 돌아올 결심부터 결정까지 하루 만에 해버렸으니.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스스로는 성장하고 있다고 확신하는데 가끔 또 주변이 눈에 들어오면 그것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뒤쳐지는 느낌이 들고, 수시로 나를 다잡지 않으면 조급함이 나를 먹어 치웠다. 불안함과 조급함에 그리고 그들이 불러온 우울함에 아팠었던 나는 다시 아프고 싶지 않아서 인지 ‘알아차림’의 지점이 훨씬 더 낮아졌다. 이전에는 어느 정도로는 ‘열심히’의 축에도 못 꼈었는데, (스스로 그 단어를 붙이고 인정하는 기준이 매우 높았다.)


열심히 살려고 다시 온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인다. 그것을 조금 덜어보려 매일 아침마다 카페에 간다. 카페로 걸어오는 길에는 나무로 덮인 터널 같은 길이 있다. 매미와 나무에 산다는 개구리를 무서워하는 나는 매미와 나무에 사는 개구리의 울음소리로 잔뜩 뒤덮여 있는 그 나무 터널을 지날 때마다 긴장한다. 그래도 지나야 하니 걷긴 하는데 위를 올려다보진 못한다. 혹시나 눈이 마주치면 참지 못할 것 같아서. 두려움이 있는 그곳을 올려다보며 나아가기엔 내가 너무 겁이 많은 것 같아서. 바로 내 발 앞으로만 집중하고 한 발씩 내딛다 보면 어느덧 지나간다. 지나고 나면 한여름 눈을 부라리는 햇빛에 그늘에 있던 때가 좋았지 하고 터널을 돌아본다. 그 속을 미화한다. 그 미화로 꾸며질 기억 속의 터널은 아름답다. 맑은 하늘에 초록으로 덮인 터널 모양은 뒤돌아서 보면 장관이 따로 없다. 분명 그 안에 있을 때엔 그늘 진 땅 밖에 기억이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 나의 과거를 떠올린다. ‘그땐 참 열정도 넘치고 꿈도 많았었는데.’ 돌아본 그 시기를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깊게 파고들어 보면 마치 내가 지나 온 나무 터널과 닮아있었다.


어쩌면 과거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 찬찬히 뜯어보면 실존하지는 않는다. 그 한 줌의 기억마저도 모든 부분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으며, 그 기억마저도 개인의 ‘현재’에 영향을 받아 재구성된다. 그런 과거를 정리된 글로써, 현재의 시점으로서 남겨두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장래 희망을 한 단어로 적어내야 하던 교육 방식에 의문을 품었던 나는 늘 어떤 직업을 떠올리기 이전에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계속해서 내 글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던 내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흔치 않은 경험을 겪어 온 나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곳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삶을 꿈꿔볼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지나 온 나무 터널 속에서는 그 속에 사는 두려움이 무서워 땅을 보고 걸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나고 나니 하늘이 보였다. 우리가 익숙해서 좋아하는 모든 것들에도 분명 처음이 있었다. 뭐든 해보지 않으면 모르고, 겪어보지 못하면 익숙해질 겨를이 없다. 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햇빛이 내가 가야 할 길을 비춰줬다. 뜨겁긴 해도 밝고, 어둡긴 해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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