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시 돌아온 미국, 여름
내가 지내던 곳은 미국 시골 동네였다. 마트를 가려도 10분 넘게 차 타고 나가야 하고, 드넓은 들판이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남부의 시골 동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따뜻함이 넘쳤다. 나 역시 예상치 못한 미소에 무장해제 되는 경험을 자주 하고는 했다. 한국에서도 비록 작은 동네이긴 해도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 사람들을 평생 겪어 온 나로서는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학기 중의 일이었다. 캠퍼스 내에 있는 12층짜리 거대한 도서관 1층에는 스타벅스가 작게 있었다. 수업 시간 전 과제를 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음료를 주문했는데,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나왔다. 아마 당시의 나는 영어가 유창할 만큼 능숙하지 못했을 때라 소통 오류가 있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나왔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어, 그래? 그럼 다시 만들어 줄게.’ 하며 새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음료를 만드는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잘못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답답한 마음에 화가 확 일어났다. ‘몇 번을 말했는데.’, ‘미국 사람은 왜 이렇게 멍청해?’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무의식 중에 떠오르고 있었다.
애써 올라오는 답답함 섞인 분노를 꾹 참고, 그 크림 폼이 아니라, 다른 거라고 그리고 설탕 시럽은 넣지 말아 달라고 다시 한번 설명했다.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이미 굳어버린 내 얼굴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점원은 ‘아, 이게 아니야? 그럼 다시 만들어 줄게.’ 하며 도로 컵을 가지고 갔고, 세 번의 음료가 다시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 잔을 내게 건네며 ‘다시 만들었는데 혹시 어떤 지 말해줘.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해 볼게.’ 하고 말하며 'I'm sorry.' 하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번거롭게 같은 음료를 두 번 세 번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불만에 기분이 좋지 않았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환한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얼굴이 확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따지고 보면 그저 소통의 오류였을 뿐인데, 악의로 그렇게 한 것도 아닐 텐데. 그제야 그 아르바이트생의 모습들이 새로운 장면으로 떠올랐다. 포스기를 잘 다룰 줄 몰라 버벅대고, 벽에 붙은 레시피를 보고 하나하나 확인하며 재료를 찾아가던 모습. 그것은 분명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알바생인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이 일하는 선배가 잠시 자리를 비워 잠깐동안 혼자 보고 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 그 모습이 그 미소를 맞이하고 난 후에야 내게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그 정도도 제대로 못하는 멍청한.’이라는 프레임을 감정적으로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답답하고 낭비라고 생각했던 그 십 분 남짓한 시간이 그녀가 건넨 미소 한 번에 별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있었다. 그러자, 내 미간에 힘이 들어가며 만들어낸 주름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알아차리니 그것이 서서히 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미소에 패한 죄책감'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녀에게 ‘It's Okay.’라고 말하며 그녀와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한 순간에 후- 하고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깟 미소 한 방에. 놀랍게도 그게 전부였다. 받아 든 커피는 성공적이었고, 특별히 맛있지는 않았지만 제법 특별하게 느껴졌다.
교환학생이 끝나고 잠깐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차갑다.’였다. 장기간 비행을 마치고 무거운 짐을 등에 인 나는 서울역까지 한 번에 운행하는 고속 공항철도를 탔다. 일반 공항철도와 달리 표를 따로 사고 들어가야 했는데, 각 표에는 자리가 적혀 있었고, 처음 타보는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열차가 도착하고 가까운 아무 자리에 앉았는데, 연이어 들어온 두 사람이 ‘저기요.’ 하며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자 그들은 ‘여기 제 자린데요.’ 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딱 두 마디 했을 뿐인데, 표정 없는 그 얼굴을 맞이한 순간 알 수 없는 ‘차가움’을 느꼈다. 나는 멋쩍어 ‘제가 잘못 봤네요. 죄송합니다.’ 하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그들은 그저 대답 없이 자리에 앉았다. 제 자리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아, 이게 한국인가.’ 잠시 동안 잊고 있던 그 냉담함을 한국의 열차를 타자마자 깨달았다. 눈이 부시게 깨끗한 시설은 마치 로봇이 사는 세상인 듯 차갑고 베일 것 같았고, 열차 안의 사람들은 모두 네모난 작은 무언가에 열중하거나 앞을 보고 있어도 표정이 없었다. 밝은 얼굴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그 표정은 무표정, 그 이상의 것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이 각박한 도시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웃음이 흔하다. 길을 가다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 보이고, 심지어 차창 너머의 운전자는 보행자인 내게 먼저 지나가라며 미소를 보인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힘든 날에도 길거리에서 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짓는 얼굴들을 보는 것만으로 금세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누군가와 다툴 때에도 그저 그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으로도 별 말없이 픽 마음이 풀어진다. 웃는 행위 즉, ‘웃음’은 그렇게도 힘이 세다. 일상에서 누군가와 말을 섞을 때 웃음을 짓고 있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조금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서 유난히도 많이 느꼈다. 웃음은 마음의 온도를 높여 서로를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평소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은 나는 삶을 가볍고 즐겁게 살아야 괴로움이 없다는 말을 한 스님의 말씀을 통해 자주 되뇌곤 한다. 가볍고 즐겁게.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그 삶의 첫 단계는 바로 그저 웃어 보이는 것. 그것이 그 시작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