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시 온 미국, 여름
미국은 인내심이 조금 더 많이 필요한 나라인 것 같다. 음식을 주문하는 데도 한참, 돈을 보내는 데도 한참, 마트에서 계산을 하려고 해도 한참이 걸린다. 이게 미국 사람 특유의 ‘여유’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죽어도 그 문화에는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빨리빨리 사회가 익숙한 한국 토박이로서는 그런 긴 기다림의 시간이 아무래도 어색했다. 그 중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아무래도 식당 문화였다.
미국의 문화는 식당에 들어가면 원하는 자리에 앉고, 주문을 할 때는 직원을 부르는 한국의 식당 문화와는 조금 다르다. 식당 차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미국 식당은 모든 절차를 손님이 기다려야 한다. 우선 식당에 들어가면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테이블마다 담당 직원이 있고, 직원이 자리를 안내해주면 우리는 그녀(혹은 그)를 따라 자리에 앉는다. 직원은 가장 먼저 음료를 뭘로 할 건지 물어본다. 각자 원하는 음료를 말하면 메뉴 판을 두고 음료를 가지러 간다. 메뉴를 둘러보고 있으면 직원이 음료를 가지고 온다. 그 때 직원이 ‘Are you ready to order?(주문할 준비 됐어?)’ 하고 물어보면 주문을 하는 방식이다. 주문할 메뉴를 먼저 골랐다고 해도 직원을 먼저 부르지 않고, 직원이 바빠서 조금 늦게 온다고 해도, 재촉하거나 부르지 않는다. 그저 기다린다.
식사를 마친 후의 절차 역시 조금 다르다. 계산은 ‘체크아웃’이라고 표현하는데, 음식을 다 먹은 것 같으면 담당 테이블 직원이 ‘계산서 드릴까요?’ 하고 물어보러 온다. 달라고 하면 금액이 적힌 계산서를 가지고 오고, 카드로 계산할 경우 그곳에 카드를 껴 두면 다시 와서 가져간다. 카드와 영수증을 다시 가져다 주면 그 종이에 팁을 적고, 카드를 챙겨 나가는 방식이다. 이 때도 역시 다 먹었다고 직원을 부르지 않는다. 그저 올 때까지 기다린다. 직원 역시 최종 영수증을 가져다 주며 늘 이 말을 덧붙인다. ‘Don’t rush.’ 서두르지 말고, 당신들의 시간을 즐기라고. 손님이 많든 적든 웨이팅이 있든 없든 달라지는 건 없다. 처음에는 이 문화가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답답했다. 나는 빨리 먹고 싶은데, 나는 빨리 계산하고 나가고 싶은데 모두 별 말 없이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비록 그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혹은 뒤에 일정이 있더라도 재촉하거나 부르지 않고 기다린다. 그래서 그런 지 가끔은 지나치게 늦는 일 역시 발생한다.
한번은 이곳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 사자 군(가명)과 함께 캠퍼스 근처 스포츠 바에 간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호프집 같은 곳인데 매주 월요일 수요일마다는 빙고와 트리비아라는 퀴즈를 맞추는 게임도 열린다. 사자는 그곳의 거의 3년 째 단골이었고, 나는 지나가다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 식사 치고는 조금 늦은 시간에 방문했기에 유독 배가 너무 고팠다. 여느 날과 같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겨우 음식을 시켰다. 그 날은 유독 서버가 올 때까지도 한참(당시의 내가 느낀 정도의 감정)을 기다렸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다.
음식을 시키고 나서도 30분이 지나도록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사자에게 음식이 너무 안 나오는 것 같다며 재촉했고, 그때마다 그는 ‘아마도 처음 일하는 거 같다.’며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그러다가 나오는 재미 있는 농담에 웃고 떠들다가도 50분이 넘어가는 순간 화가 훅 하고 올라왔다. 당시의 나는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큰 에너지를 쓰는 일이었고, 급기야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배고픔은 이리도 무섭다.) 한국 식당 같았으면 벌써 컴플레인을 걸고도 남았을 이 불합리한 상황. 당시 미국에 온 지 1달 남짓 된 나에게 그 기다림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우리보다 늦게 온 테이블은 이미 음식을 다 먹고 나가고 있었다. 나는 결국 입을 꾹 닫았다. 입을 열면 온갖 종류의 불만과 화가 터져나올 것 같아서. 배고픔과 허기짐은 사람을 포악하게 만듦을 나는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애꿎은 물에 담긴 얼음만 와그작 대며 씹어 먹었고, 사자는 단골 음료인 스윗티를 두 잔 째 마신 채였다. (미국은 대부분의 음료가 처음 시키고 나면 무한 리필이다.)
결국 1시간이 좀 지나서야 음식이 나왔다. 그마저도 내가 시킨 사이드 메뉴가 다르게 나온 채였다. 나는 일단 먹기 시작했다. 다시 달라는 말을 하기도 시간이 아까웠다. 한참을 그렇게 먹고 있는데 우리 테이블 담당이 아닌 다른 종업원이 다가와 ‘How’s your everything?’하며 사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알고 보니 단골인 사자와는 친분이 있는 종업원이었다. 나는 속으로 천 번은 넘게 ‘So bad’ 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사자는 우리 거의 1시간 기다려서 음식을 받았다고 특유의 속 좋은 미소와 함께 가볍게 털어놓았고, 그러자 그 종업원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들어보니, 우리 테이블 담당 직원은 사자의 말대로 최근 일을 시작한 신입 종업원이었는데, 말 그대로 ‘Bitch’ 라고 했다. 일을 정말 못해서 자르고 싶다고, 그 직원 때문에 너무 힘들고 고생 중이라며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한바탕 하소연을 한 뒤, ‘너 스윗티랑 물 더 줄까? 내가 가져다 줄게.’ 하며 빈 잔을 채워준 뒤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나는 사자에게 최선을 다해 한국의 식당 문화에 대해 설명하며 ‘너희는 이런 데도 그냥 기다리냐.’고 물었고, 그는 그냥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I enjoyed that time.' 자기도 당연히 너무 배고팠지만, 덕분에 너랑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그러며 방긋 웃는 것이었다. 순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어떤 삶을 살면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는 음식점에서 먹는 음식보다도 다른 것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또 한번, 그 웃음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그래,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이런 거였지.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 해맑은 미소에 그날은 여전히 내게 ‘속 터지는 음식점’ 이 아닌 ‘대화를 많이 나눴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럴 수 있지.’ 하며 웃을 수 있는 여유와 나는 도저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그 이해심에. 그렇게 미국의 ‘참’ 여유와 이 사람의 진 면목을 맛봤다.
그 이후에도 나는 그가 한번도 서두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물론 가끔은 그것 때문에 답답할 때도 있지만, 나 역시 무언가를 기다리는 법, 즉, 여유를 그에게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 한국에서도 성격이 급한 편이었던 나 역시 남들보다 불쑥 화도 잘 내고, 더디더라도 ‘기다림’의 가치를 깨닫고, 조금씩 느려진다. 느리다고 도태되는 것은 아니다. 느리다고 답답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속도에는 그 안에 가치 있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천천히 걷는 산책만이 주위를 돌아보며 거닐 수 있듯이.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미국의 시골에서 나는 그런 것들을 배웠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지루하더라도 그래야만 배울 수 있었을 것들이 이제는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