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세대의 문화라 일컬어지는 것들

#5 다시 돌아온 미국, 여름

by Zepline

타코 집에 간 적이 있다. 제법 가까운데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던 식당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사자(가명) 군과 학교에 있는 레크레이션 센터에서 운동을 마친 뒤, 저녁 메뉴에 대해 고민을 하며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결정 장애와 먹는 걸 좋아하는 성향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우리는 늘 저녁 메뉴에 대해 고민하고는 했다.) ‘내가 뭐 먹을래?’ 하고 묻자, 그는 여느 때와 같이 ‘I don’t know.’ 하고 말했고, 나는 주변에 있는 식당 이름 끝에 물음표를 붙이며 나열했지만, 내가 말하면서도 딱히 구미가 당기는 음식이 없었으므로 결국 나도 ‘I don’t know’를 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는 ‘Hmm’ 하더니 순간 ‘Hey’ 하며 누군가를 불렀다. 그 주인공은 우리의 맞은 편에 주차된 차로 향하고 있던 한 노인 분이셨다. 흰 수염에 작은 키, 주름으로 보았을 때 그는 60대쯤 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사자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저녁 메뉴를 고민 중인데, 근처에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디죠?”

그러자 그는

“스퀘어에 있는 타코집이 제일 괜찮지.”

하고 말했고, ‘Thank you. Have a good day.’ / ‘You too.’ 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이 광경에 신기하면서도 놀랐던 나는 그에게 원래 알고 있던 분이냐고 물었고, 사자는 전혀, 오늘 처음 본 사이라고 했다. 그 길로 우리는 타코집으로 향했고, 역시나 연륜의 추천 답게 음식은 성공적이었다. 참으로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 때의 기억이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선명히 남아있다. 미국은 다 이런가. 이게 바로 미국의 자유로움인가. 나는 그렇게 낭만에 젖으며 그에게 ‘미국은 이렇게 낯선 사람한테 말 거는 게 자연스러워?’ 하고 묻자,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남부는 그렇다고 했다. 길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으며 ‘Hi’ 하고 인사를 건네고, 어딜 가든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나가다 옷이 마음에 들면 ‘I like your shirts’ 하고 덕담을 나눈다. 아무리 멀리서 다가와도 끝까지 기다리며 문을 잡아준다. 그러면서 덕담이 한 두마디씩 다시 오간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지나친 관심은 두지 않는다. 나는 이런 자유로우면서 연대가 있는 문화가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할 때는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조금 적응이 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파고 들 틈이 별로 없다.


6월, 미국 학기가 끝나고 잠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키우는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다. 집 근처에 있는 성북천 길을 따라 걷는 게 우리의 단골 산책 코스였는데, 내가 사는 지역의 특성 상 오전 시간에는 어르신 분들이 꽤 계신다. 똑같은 종에 색과 크기만 조금 다른 우리 강아지들은 어딜 가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간혹 가다 그 분들은 ‘둘은 형제여?’ 하며 강아지들의 관계를 묻곤 했다. 그 날도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이가 조금 있으신 어르신이 말을 걸었다. ‘아이고, 참 예쁘다.’ 하며 시작 된 대화는 꽤 길게 이어졌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어르신 역시 강아지가 있었는데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며,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산 속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조용히 뛰놀며 사는 게 꿈이라고, 폐지를 줍던 한 할머니가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원래 같으면 그런 상황이 불편해 적당히 장단을 맞춰 드리다 자리를 뜨기 위해 이것저것 핑계를 댔을 것 같은데, 그 날은 그 대화가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천천히 걸으며 성북천 시작점에서 두 다리를 지날 만큼 이야기를 나누다 어르신이 먼저 떠나시고 나서야 대화가 끝났다.


그 외에도 가끔 강아지를 핑계로 내게 말을 걸어 주시는 분들이 종종 계셨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나이가 꽤 있으셨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나는 미국의 현재 문화가 우리나라의 옛 세대의 문화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빠른 발전에 정작 그런 것들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 역시 미국에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대화들이 불편한 사람 중 하나였다. 누군가 길거리에서 말을 걸면 피하거나 ‘빨리 뜨고싶다.’ ‘나 바쁜데.’ 생각하기 바빴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소중하고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이 서로에 대한 관심과 따뜻함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아서. 언젠가 세월이 흐르면 이런 문화가 한국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까 겁난다. 어른 세대는 점점 사라져 갈 것이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은 점점 해외로 나가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들은 각자의 치열한 삶을 살기에 바쁘다. 마치, 점점 더 차갑고 작은 유리관 속에서 생활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한국에 정이 그득히 남아 있는 특이한 젊은 세대 중 한 명으로서 그런 오래된 것들이 끈질기게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 관심만이 지켜낼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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