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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치돈 Feb 04. 2021

<안티고네>를 통해 바라보는 여성 영웅 서사

*2018년에 쓴 글


2018년 현재는, 1918년 영국에서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 100년 이후이자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큰 파장을 미친 미투 운동의 시기이다. 하지만 여성 인물은 폭력 또는 학대의 대상으로서 피학적인 위치에 있거나 "여자 시체"로 나타나는 등, 소설과 영화를 포함한 각종 매체가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 가학적이다. 더러는 <암살>(2016)에서 대의를 위해 아버지를 죽이는 안옥윤이나 <악녀>(2017)에서 사랑과 모성으로 인해 복수를 결심하는 숙희와 같이, 주연으로 나타나는 여성 인물들은 무장한 모습으로 공동체와 사적인 영역 사이에 고민하는 영웅의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여성 서사, 특히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는 발전될 여지가 있다. 여성을 반항하는 영웅으로 보여주는 서사가 보여주는 것과 지녀야 할 의미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스크린이나 페이지 속 여성 영웅이 남성을 살해한다거나 그에 반발한다는 이유만으로 성차별적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시기일수록, 과거로 돌아가 여성을 중심인물로 나타냈던 이야기들에 나타나는 여성 영웅적 면모와 그것들이 오늘날의 여성 영웅 이야기에 대해 암시하는 바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등장하는 안티고네의 반항적 사례를 기반으로 현대 사회에서의 여성 영웅 서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녀야 할 함의에 대한 고찰은 더욱 중요한 논의를 위한 기반이 될 것이다.

<안티고네>는 안티고네와 그의 동생 이스메네의 대화로 시작된다. 안티고네는 테베의 왕 크레온의 폴뤼네이케스를 매장하지 말고 “새 떼의 반가운 먹이가 되게 버려두라”는 칙령을 어기려고 하고, 결국 그는 이스메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기로 한다. 안티고네의 매장과 애도는 전 국가에 알려지고 크레온은 이를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하며 그를 생매장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결국에 크레온은 예언자의 경고를 듣고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해줄 것과 안티고네를 풀어줄 것을 명령하지만, 안티고네는 이미 자살을 하고 이로 인해 안티고네의 약혼자 하이몬과 하이몬의 어머니 에우뤼디케도 자살하게 된다. 이 모든 비극의 중심에는 안티고네와 안티고네의 결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행위는 많은 철학자와 이론가로부터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켰고, 이로부터 중심적으로 다룰 두 이론은 차례대로 뤼스 이리가레와 주디스 버틀러의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이리가레는 <다른 여성의 검시경>에서 모든 것의 재정의가 필요함을 주장하며, 안티고네에 대한 해석을 시작한다. 그는 안티고네를 국가 주권주의에 저항한 여성을 해석했으며, 이 과정에서 크레온과 안티고네를 각각 국가의 권력과 친족법의 수호신, 인간의 법과 신의 법, 남성 질서와 여성 윤리라는 헤겔의 대립항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헤겔의 해석과 구분될 수 있는 점은 이리가레의 혈연과 피에 대한 코멘터리를 기반으로 하는 안티고네의 외부적인 면모다. 이리가레에 의하면, 혈연은 “정치적 평등이라는 완전히 추상적인 원칙으로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엄격히 배제하고 절멸시켜 버리기까지 해야 하는 몸의 구성체이고 생동감”을 의미한다.[1] 이러한 혈연은 국가의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피를 상징하고, 여성은 그 혈연관계라는 상징하에 있는 피와 살을 체현한다. 안티고네가 수호하는 친족의 법은 남성적 질서 안에서 억압되고 잊혀 온 여성성을 나타내며, 이러한 모습은 사회구조의 외부에서 저항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리가레의 해석 하에 안티고네는 크레온으로 대표되는 남성적 사회구조의 바깥에서 저항하는 주체적인 여전사로 존재한다.

이러한 이리가레의 해석은 안티고네의 외부성을 강조하면서 여성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에 힘을 실어준다. 모린 머독의 <여성 영웅의 탄생>을 참고하면서 여성 영웅에 대해 해석해보자면, 여성은 은연중에 여성임을 거부하는 길을 벗어나야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가 규정한 기준이 곧 성공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임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며 자라온 여성들은 그러한 가치를 좇지 않아야 한다. 남성이 규정한 것을 좇으면 결국 ‘남성 영웅’의 여정을 그대로 모방하게 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우리에게 주어진 ‘여성성’을 포용하며 이에 적합한 여성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차이에 주목하며 여성과 남성은 각각 독자적인 보편성을 표현했다고 주장한 이리가레의 입장과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선상에서,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포고령과 국가의 법이 남성성의 산물임을 직시한 이후, 남성이라는 보편적인 준거를 거부하며 사회의 바깥에서 저항하려고 한다. 따라서 안티고네는 국가 권력에서 벗어나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었던 ‘여성성’을 기반으로 저항하는 여성 영웅으로 볼 수 있다.

주디스 버틀러는 이리가레와 달리 헤겔의 해석 방식을 거부했으며 안티고네를 퀴어 주체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헤겔에 의하면 안티고네는 친족을 대표했고 이리가레에 의하면 안티고네는 여성 영웅을 대표했지만, 버틀러에 의하면 안티고네는 그 어느 이념의 ‘대표’로 해석될 수 없다. 그는 안티고네가 크게 두 규범을 교란한다고 주장하며, 그 첫 번째는 친족 규범이다. 안티고네는 본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아버지이자 오빠인 오이디푸스의 딸이고 그에게 폴뤼네이케스는 오빠이면서 조카이다. 따라서 버틀러가 보기에 헤겔의 주장대로 안티고네를 국가법과 친족법의 갈등으로 해석하면 안티고네의 근친상간적인 면모와 오빠에 대한 사랑과 존중으로 인해 죽음을 선택한 행위를 해석할 수 없게 된다. 안티고네는 젠더의 규범을 교란하기도 하는데, 이는 주로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대사들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안티고네가 크레온의 남성적 권위에 맞서는 모습은 전통적인 의미의 여성적 행위로 해석하기 어렵다. 맞서는 과정에서 안티고네는 고전적으로 여겨진 여성적 발화 행위가 아닌, 오히려 크레온에 의해 사용되는 남성의 권위적인 언어를 활용한다. 안티고네의 언어는 그를 남성적 여성으로 고정하고 결국 그는 남성성을 수행하게 된다. 크레온이 “그녀가 이기고 그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내가 아니라 그녀가 남자일 것이오.”라고 말하듯이, 안티고네의 언행을 통해서 젠더 역전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크레온의 언어를 모방함으로써 그의 목소리가 가진 폭력성을 드러내 보여주고 이로써 크레온을 당황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안티고네가 진정한 남성성을 띠는 것인지 혹은 권력층의 젠더 속으로 가로질러 들어간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안티고네는 여성과 남성의 젠더 정체성 사이에 허물어진 경계에 위치한 모호한 인물로, 그가 패러디하는 남성성마저 존재하지 않는 원본을 모방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여성 영웅’으로 해석할 수 없을뿐더러, 그 어느 편을 대표하는 영웅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여성 인물의 정체성의 모호함과 대표 불가능성은 지금까지 우리가 소비해 온 여성 중심 서사에서 주목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여성 영웅이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방식에는 주로 그를 둘러싼 가족 및 젠더 관계가 큰 동기로 작용한다. 머독에 의하면, 여성 영웅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위해 본인과 가장 가까운 남성, 즉 가족 내의 남성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여기서부터 여성성 분리가 시작된다. 그의 여성 영웅에 대한 이론이 완벽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의 여성 영웅 서사는 머독의 분석과 같이 동기와 초기 단계에 젠더 정체성과 규범 관련된 것이 포함되는데, 안티고네는 그 젠더 규범 자체를 혼란스럽게 하는 인물로서 여성 영웅이라는 명칭을 받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이리가레는 안티고네를 남성적 권위에 저항한 여성 행위의 상징으로 보는 반면에 버틀러는 안티고네는 친족 교란과 젠더 역전을 나타냄으로써 친족의 위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해석하고 있다. 두 해석은 모두 합리적이며 정당한 근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안티고네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여성 중심 서사에 대해 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버틀러의 분석이 더 합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리가레의 해석은 결국 헤겔의 그것을 많이 차용하고 있으므로 이분법적인 구도를 기반으로 하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성적 저항을 남성법에 대치시키는 주장은 여성의 신념이나 주체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여성 해방적인 암시를 줄 수 있으나, 국가법에 저항함으로써 친족법을 대변하게 된다는 논리는 여성 캐릭터의 중층적인 면이나 다면적인 것을 간과하고 있다. 안티고네를 ‘A’ 또는 ‘B’가 아닌, ‘A’와 ‘B’를 함께 혹은 그 이상을 담고 있거나 그 경계에 위치한 인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으로 해석을 해야만 여성이 그저 엑스트라나 시체, 굉장히 단편적인 인물로만 재현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안티고네를 기존의 상징적 질서를 약화하는 캐릭터로 바라보고 분석을 하려는 시도는 상징계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으로도 충분히 이어질 가능성을 지닌다. 그들에게 주어진 상징계에 계속 의문을 던지고 재분절하려는 여성 캐릭터들은 일반화적 해석을 거부하게 되고 결국 페미니즘적 함의를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안티고네를 여성 영웅이나 여전사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 다층적이며 모호한 정체로 바라보는 것이 앞으로의 여성 서사를 위해 더욱 유익할 것이다.

여성 영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는 그의 손에 쥐여 주어야 할 무기의 종류가 아닌, 그가 영웅의 여정을 밟게 되는 이유와 배경을 시작하는 지점으로 잡아야 한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영웅이 되지 않는다. 남성은 아버지를 모방해서 영웅이 되려 하지만 여성은 어머니처럼 살기 싫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주어졌던 수많은 여성 영웅들은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를 목표에 두고 여전사로 거듭나 왔다. 앞으로의 여성 영웅 서사는 여성 캐릭터와 어머니 혹은 다른 여성과의 관계를 주목하며 영웅의 동기와 저항 행위를 더욱 중층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버지 또는 남성 조력자를 본받으며 가부장적인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여성 영웅의 전형적인 이야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진부한 서사 전개 방식을 타파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 영웅 서사에 깊이 내재하여 있던 가부장적인 메시지를 타파하는 것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안티고네의 서사는 그 내용과 해석의 면에서 주목할만한 가치를 지닌다. 버틀러가 주장했듯이 안티고네를 여성 혹은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을 대표하는 인물로 보기는 어려우나, 그의 저항 행위가 남성을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동기 자체에 어느 정도 페미니즘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의 수행성에 대해서는 더욱 논해야 할 지점들이 많지만, 안티고네를 고정될 수 없는 정체로 분석한 것은 앞으로 나타날 수많은 여성 인물 서사들이 참고할 청사진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 모린 머독(2014), 『여성 영웅의 탄생』, 고연수 역, 교양인

- 조현준, “안티고네: 숭고미에서 퀴어 주체로”, 『라깡과 현대정신분석』, 제8권 제2호, 2006, pp. 181-211.


[1] 조현준, “안티고네: 숭고미에서 퀴어 주체로”, 『라깡과 현대정신분석』, 2006, 제8권 제2호, p.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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