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 공제
“이번 상반기 공제 실적이 좋지 않아요. 직원들 모두 신경 써주길 바라요.”
직원회의를 끝나자 막내 직원이 투정 아닌 투정을 한다. “아니 선배님. 요즘 누가 보험 같은 거 많이 가입하나요? 고객님들도 다른 회사 상품 다 가입하시고 저희 상품은 잘 모르시던데. 말 꺼내기도 힘들고… 그냥 다 힘들어요 정말.”
공제. 새마을금고에서 판매하는 보험상품이다. 공제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공동으로 재산을 준비하여 두는 제도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가입기간이 길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보상을 못 받으니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잖게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새마을금고 직원으로서 방문 고객님들을 상대로 영업판매를 해야 한다. 고객님이 필요한 종류의 상품을 소개하고 설명하여 가입까지. 또 사고 발생하면 접수하여 보상받을 수 있게 관리도 한다. 다른 영업활동이 그러하듯이 제한적인 시간 안에서 계약을 따 내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막내 직원의 고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 공제뿐만 아니라 예금 대출 카드 기타 등등해야 할 것이 참 많다. 가끔 고객님께 상품을 설명할 때 부정적인 말들을 들을 때면 조금 마음이 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금고에서 어려울 때 가입한 공제상품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많이 본다. 창구에서 접수된 사고신고 내역을 보면 아주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많아서 사전에 준비해 두지 않으면 막상 큰일 이 닥쳤을 때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아주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직원의 설명을 듣고 가입한 상품이 나중에 몸이 다쳤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고객님도 많이 만난다.
또 나의 어머니도 그러했다. 몇 해 전 어머니는 유방암 판정을 받으셨다. 평소에 건강하시고 아픈 곳이 없으셨어서 건강검진에서 발견한 암은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또 그와 함께 오랜 기간 동안 치료받으며 지출될 병원비도 걱정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의료시스템이 잘 구축되어있어서 질 좋은 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암 치료는 수술과 별개로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치료를 받으며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데 그동안 경제적인 부담이 크다. 그때 많은 경제적 도움을 받은 건 다름 아닌 어머니가 가입하신 보험상품이었다. 덕분에 어머니는 병원비 걱정 없이 충분한 치료를 받으셨고 지금은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고 건강하게 생활을 하신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으신 고객님이 암 관련 상품에 가입하셨다. 상품 가입 후 사고신고 없이 건강하시길 바라지만 혹시나 고객님께 사고가 발생해도 고객님의 우산이 되어주길 바란다. 영업활동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진솔하게 정직하게 한다면 고객님들도 그 마음을 알아주신다. 막내 직원에게 설명해 주며 잠시나마 선배의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뿐만 아니라 실적을 올렸다며 선배들의 칭찬까지.. 뭐 이 정도면 괜찮다 생각이 든다. 그러나 윗분들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이번 달 실적이 너무 저조하네요. 이번 주까지 새로운 가망고객 관리 보고하세요.” 야근이다… 이런…
“고객님 이번에 새로 나온 상해 관련 상품이….”
“아 싫어. 가입된 거 많아서 필요 없어요. 충분해.”
“고객님 일단 설명 한번 들어 보시고 고민해보세요. 이게 가격도 싸….”
“그만! 너무 많이 들었어. 여기 올 때마다 얼마나 권유를 하던지 필요 없는 것도 막 들었어.”
하. 안 통한다. 그럼 이제 마지막 필살기를…
“이거 하나만 가입해주세요. 제가 이번 달 실적이 안 좋아요. 정말 스트레스야. 사장님...”
“뭐라고? 아이고 지겨워. 지겨워 죽겠어. 내가 진짜 못 산다 못살아…”
“이 상품 새로 나왔는데 금액도 저렴해요. 설명서 한번 읽어 보세요. 여기.”
“진짜 이번에만 가입하는 거야. 나 이제 끝 끝!!”
나의 불쌍한 연기에 마지못해 고객님이 상품 가입을 하신다. 금고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 이 고객님은 매번 나의 권유에 싫다고 하시면서 가입을 해주시는 감사한 고객님이시다.
지켜보던 직원들이 나와 사장님의 코믹한 상황을 보며 킥킥거리다 결국 다른 고객님과 다 같이 박장대소를 하신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덕분에 윗분들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 뜨거운 시선은 무엇…? 후배님 먹고사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겁니다. 실망한 표정 거두시고 얼른 고객님께 설명하시죠. 얼른.